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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독립서점은 어떻게 부활했을까? (기획회의, 458호)
    외부 매체 기고 2018. 2. 22. 19:30

    미국의 독립서점은 어떻게 부활했을까?

     

    류영호(교보문고 콘텐츠사업단 차장)

     

    일반적으로 독립서점(independent bookstore)은 규모와 운영 인력이 중소형 규모로 소유 구조가 개인 또는 단체이며, 거대 상업 자본에서 독립된 서점을 의미한다. 이와 대비되는 대형 체인형 서점은 대부분 주식회사 법인의 형태로 대규모의 투자 자본가 또는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반스앤노블(Barnes&Noble)과 보더스(Borders) 같은 대형 체인형 서점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미국 전역의 대형 쇼핑몰에 입점했고, 30%씩 할인 판매를 단행하면서 많은 중소형 서점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1990년대가 되면서 반스앤노블과 아마존이 온라인 서점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95년에 문을 연 아마존이 급성장하면서 5년 후 미국 내 독립서점의 수는 43%나 줄어 들었다. 2007년 아마존이 전자책 킨들(Kindle)을 오픈하면서 종이책 판매에 집중된 대형 체인형 서점도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의 급성장 등으로 촉발된 경영 실패로 인해 2011년에 보더스가 파산하면서 미국 서점업계는 충격에 빠져 들었다. 2010년대에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환경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 디바이스가 일상화되었다. 출판 생태계에도 전통적인 포맷과 채널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출판 유통을 대표하는 서점의 위상도 변하고 있다. 반스앤노블도 디지털 신규 사업에서 실패를 겪으면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상대적으로 온라인과 전자책 판매에 있어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춘 아마존은 2015년부터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면서 출판유통 시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 유통 역량으로 성장과 경쟁을 거듭하던 대형 서점 브랜드 사이에서 독립서점들이 반격하고 있다. 미국서점협회(American Booksellers Association)의 발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5년 사이에 미국 전역의 독립서점 수가 각각 1,651개에서 2,227개로 35% 정도 증가했다. 독립서점의 서적 판매액은 2015년에 전년대비 10%, 2016년에는 5% 증가했다. 온라인 서점이 본격화되었던 1990년대 중후반, 독립서점이 감소되었던 것과는 다른 결과를 보인 것이다.

    우선, 미국 독립서점의 부활은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앙과 온라인에 집중된 소비문화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만든 ‘바이 로컬(Buy local)’ 운동을 시작점으로 촉진되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전국의 많은 도시에서 독립서점 대표들은 그들의 경제적 이익에 사회적 가치를 결합시키는 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주변의 다른 독립적인 가게 주인들에게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지역적 공동체 가치가 유지되었고, 그들과의 연합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주민들에게 독립서점은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들의 모임 장소이자 지역 커뮤니티의 거점이 되었다.

    최근 기술의 재출현(Technology Re-Emergence)이 혁신을 불러올 수 있다는 연구로 잘 알려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라이언 라파엘리(Ryan Raffaelli) 교수는 미국 독립서점의 부활의 비결을 3C라는 키워드로 정리했다. 서점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만들고(Convening), 기계적인 시스템이 아닌 사람이 직접 책을 추천하고(Curation),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만들었기(Community)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서점업계에서 기술의 혁신을 주도하는 아마존이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것을 독립서점이 채워갔다. 아마존이 빠르고 편리함을 강조한다면 독립서점은 느리되 사람들과의 꾸준한 접촉을 만들고 있다. 그러면, 3C에 대한 간략한 분석과 주요 사례를 살펴보자.

     

    ① 컨비닝(Convening) : 온라인 서점에서 더 많은 할인율과 무료 배송으로 책을 구입할 수 있지만, 지역의 소규모 독립서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성이 있다. 대부분의 독립서점들은 독자들이 좋아하거나 관심을 갖고 싶은 주제와 저자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빠르고 다양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오프라인 단골 고객 리스트를 활용하고,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큰 비용없이 저자와 출판사, 독자 간의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독립서점들은 이제 “얼마나 책을 많이 팔았느냐가 아니라, 독자들이 얼마나 좋은 시간을 보냈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양한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각종 출판 행사, 저자와의 만남, 어린이 생일 파티, 청소년 도서 출판 지원, 다양한 독서 모임 등을 주관하고 열고 있다. 몇몇 독립서점은 연간 500개 이상의 행사를 주최할 정도로 지역의 출판문화 향상에 많이 노력하고 있다. 2004년 뉴욕 맨해튼 소호에 문을 연 독립서점 맥널리 잭슨(Mcnally jackson)을 오픈한 사라 맥널리는 대형 서점에서 취급하지 않는 다국적의 작가들이 펴낸 책들을 판매한다. 거의 매일 독서 토론회와 해외 작가와의 만남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매장에 있는 에스프레소 북머신(Espresso Book Machine)을 통해 지역 사람들이 편리하게 책을 제작할 수 있는 POD(Publish On Demand) 서비스도 제공한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북 코트(Book court) 서점은 주말 저녁 시간에 가족 단위로 찾아올 수 있도록 무료로 영화를 상영하거나 음악 행사를 열고 있다. 정치·사회분야의 토론회, 시 낭송, 어린이 북클럽 등 거의 매일 문화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덴버에 있는 북바(book bar) 서점은 책과 함께 와인과 맥주를 마실 수 있게 판매하는데 지역 주민들이 술 한잔하면서 책도 읽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게 만들었다. 펜실베니아 미드타운에 있는 스콜라 서점(Midtown scholar bookstore)은 매달 작가와 저널리스트를 초청해서 글쓰기 관련 강의를 열고 있다. 기타리스트나 인디밴드의 음악회, 장르별 북클럽은 멀리있는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찾을만큼 인기가 높다.

    ② 큐레이션(Curation) : 독립서점들은 좀 더 개인적이고 전문적인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도서 진열과 재고 관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베스트셀러만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서점 직원들이 선별한 신인 작가들과 예상하지 못한 제목을 발견할 수 있게 진열해서 독자들과 친밀도를 향상시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출판사와 서점의 일방적인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의 특성, 서점 주인과 직원들의 전문성을 활용한 도서 큐레이션은 기계적인 추천에 비해 책과 만나는 감성을 더욱 자극시킨다. 미국 독립서점의 부활을 주도하는 곳은 뉴욕으로 맨해튼과 브루클린에는 100개 이상의 독립서점들이 있다. 서점마다 독특한 구성과 진열 방식으로 만들어진 그들의 큐레이션 역량은 세계 여러 서점에서 벤치마킹할 만큼 매력적이다.

    보니 슬로닉 쿡북스(Bonnie slotnick cookbooks)는 요리책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국가별 전통 요리, 인종과 종교별 음식의 특징, 다양한 컬러를 가진 식재료, 음식으로 치유하는 방법, 디저트의 역사, 연령대에 맞는 간식, 주방 인테리어 소품 등 요리와 관계된 특별한 주제를 책을 중심으로 만든 서점이다.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은 직원 채용시에 저자를 맞추는 등 주관식 퀴즈를 풀어야 하는데, 창고 직원들도 빠짐없이 책 전문가로 채용한다. 200여명의 직원들이 책을 잘 알기 때문에 코너별로 스태프가 직접 POP(Point of Purchase) 광고물에 실명으로 책을 추천하고 있다.

    미스터리어스 서점(Mysterious bookshop)은 스릴러와 미스터리 소설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서점 직원들이 모두 해당 분야의 매니아라서 방문하는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성향을 파악하고 책을 추천해준다. 전문가들이 직접 읽어보고 맞춤형 큐레이션을 해서 독자들의 도서 구입과 방문율이 높은 편이다. 아이들와일드 서점(Idlewild books)은 주인이 여행전문가로 여행서적을 주로 취급하는데 주머니 크기의 여행 가이드북부터 여행지의 역사서, 주인이 여행하면서 모은 희귀한 도서와 소품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다.

    원 그랜드 북스(One grand books)는 주요 직업군을 구분해서 인기있는 책을 큐레이팅하는데 큐레이터 카테고리에는 배우, 작가, 미술가, 요리사, 디자이너, 방송인, 정치인 등 각계 전문가들이 있다. 그들이 직접 추천하는 10종의 책들이 간략한 추천평과 함께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동시 진열된다. 동종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나 진출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추천서로 인기가 많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더 라스트 북스토어(The last bookstore)는 대형 금고를 활용한 도서 코너를 구성하고, 책으로 동굴 모양의 터널을 만들어서 포토존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마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절판된 책이나 희귀한 책을 진열하고, 저자의 초판 싸인본을 별도 장식장으로 만들어서 책의 새로운 발견을 제공하고 있다.

    ③ 커뮤니티(Community) : 독립서점은 미국의 지역주의에 대한 아이디어를 최초로 채택한 산업군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립서점은 지역 사회 가치에 대한 연대를 강조해서 아마존과 대형 체인형 서점들로부터 독자들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 미국서점협회는 서점과 지역의 다른 사업체들의 사이에서 파트너십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독립서점에서 진행되는 특별한 행사를 홍보하기 위해서 협회는 전용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회원사 중에서 지역 내의 커뮤니티를 모범적으로 운영한 사례를 공유하고, 독립서점의 정체성을 강화하는데 미국서점협회는 중요한 구심점이 되고 있다.

    포틀랜드 ‘문화의 허브’라고 불리는 파월스 서점(Powell's city of books)은 거리의 한 블록 전체를 차지하는 4층 건물에 100만 권 이상의 신간과 중고 도서를 판매하면서 지역의 거점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서점을 자주 방문하면서 주변의 카페와 쇼핑 매장들도 상권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뉴욕에 있는 블루 스타킹스(Blue stockings)는 자원 봉사자들의 활동으로 운영되는 페미니즘 전문 서점이면서, 성소수자와 진보적 정치 성향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매달 페미니스트, 진보적 교육자들을 위한 북클럽, 레즈비언들이 모여 뜨개질을 하는 모임, 여성과 트랜스젠더를 위한 오픈 마이크도 운영된다. 블루 스타킹스는 다른 길을 걷는 외로운 개인들이 서로의 지성과 감성을 나누는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세인트 마크스 서점(St.Marks Bookshop)은 2008년에 임대료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위기였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뉴욕의 시민들과 작가들의 청원으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었다. 지역의 문화 커뮤니티를 지키는 독립서점이 사라지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사례다.

    독립서점의 커뮤니티는 독자들의 힘도 있었지만, 독립출판사와 독립출판물을 통해서 더 끈끈해질 수 있었다. 자본과 규모의 경제에서 벗어나 각자의 고유함과 자유로움을 중시하는 독립출판의 생산물이 독립서점을 만나서 상생할 수 있었다. 1976년에 설립된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는 아티스트 도서 판매·연구·출판지원 등을 목표로 운영되는 자선단체로, 뉴욕에 독립서점을 적접 운영하고 있다. 서점 주인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주변 상인들과의 적극적인 커뮤니티를 통해 지역만의 차별화된 문화를 만드는 역할을 서점이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독립서점들은 경기 불황의 파장에서 자유롭지 못한 편이다. 따라서, 출판 관련 단체와 정책 기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미국서점협회는 독립서점을 지원하는 인디 바운드(Indie Bound)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독립서점이 지역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각종 지원 정책과 정보를 제공한다. 지역의 독립서점 회원들을 위해 신뢰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 목록을 발표하는데, 일정 수준의 큐레이션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다. 몇몇 독립서점은 전국과 지역의 베스트셀러를 비교해서 별도의 큐레이션 도서 코너를 구성하기도 한다. 전자책 전문 회사인 코보(Kobo)와 제휴를 통해서 전용 디바이스 판매를 지원하고, 수수료를 통해 신규 매출 채널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제 국내 독립서점들도 보다 적극적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출판 산업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갖출 필요가 있다. 함께 연대하면 거래 조건 개선과 차별화된 이벤트를 추진할 수도 있다. 물론, 출판유통 프로세스와 독자의 양상 등에서 미국 서점 생태계와 한국은 차이가 많다. 하지만, 미국의 독립서점들의 부활을 이끈 3C 분석은 한국의 독립서점들에게 지속가능한 전략과 실행의 방향을 보여준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통해 새로운 사람과 문화를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서점을 통해 욕구를 채워간다. 독립서점에서 찾을 수 있는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친근감, 정서적 애착감은 시대가 변해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물성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의 본성과 소비 욕구에 가장 근접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지역에서 사람과 책을 연결하는데 최선을 다하며 분투하는 수많은 독립서점들을 응원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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