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출판 활성화를 만든 개인출판 플랫폼 (기획회의, 459호)외부 매체 기고 2018. 2. 27. 19:47
독립출판 활성화를 만든 개인출판 플랫폼
류영호(교보문고 콘텐츠사업단 차장)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미디어 채널이 확장되면서 사람들은 연결된 모든 미디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출판 생태계도 예외는 아니다. 전문가의 영역이었던 출판 기획과 제작·유통도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출간을 목적으로 하는 작가들은 기성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저렴한 비용으로 종이책과 전자책 출간할 수 있다. 물론, 출판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콘텐츠의 수준과 상업적 성공 여부는 기성 출판과 직접 비교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하지만, 개인이 직접 출판할 수 있는 프로세스는 미디어의 생성과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출판 모델로 자리잡은 상황이다.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출판 콘텐츠 포맷이 확장되고 출판 기회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작가들의 선택지도 넓어지고 있다.
특히, 출판 콘텐츠의 유통과 소비 채널이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비용 효율성이 강화되고 있다.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거리를 단축시키면서 작가에게는 높은 인세를, 독자에게는 저렴한 가격으로 플랫폼 사업자간의 가치 경쟁도 만만치 않다. 제책의 구조는 동일하나 기성 출판사와 서점 유통 경로를 거치지 않는 출판 활동을 흔히 ‘독립출판(Indie publishing)’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물인 독립출판물은 개인과 소수 그룹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스스로 또는 전문가의 지원을 통해 펴내는 콘텐츠다. 기본적으로는 상업성을 떠나서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것을 다루는 인디(Indie)문화의 범주에 속한다. 즉, 출판계의 인디문화가 독립출판의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독립작가와 제작자는 자신의 주제 의식을 표현할 수 있는 대안적이고 새로운 출판물을 생산하는 방법으로 독립출판을 선택한다. 독자들은 관습적이고 일관된 형식의 콘텐츠가 아닌 소장 가치가 있는 한정판이란 측면에서 독립출판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독립 출판을 위한 법적인 절차는 까다롭지 않다. 종이책의 경우, 개인이나 소수 그룹이 특정 원고를 가지고 인쇄 제작사를 통해서 바로 만들어진다. 소량 인쇄가 가능한 전문 인쇄소를 이용하면 종이와 판형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통상 500부 제작시 100~200만원 내외로 가능하다. 초기 독립출판물은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없이 출간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헌적 보존 기능과 일반 도소매 유통 과정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들만의 출판이라는 철학에서 보면, 그리 필요하지 않은 관행으로 보였다. 그러나, 상업출판으로 진입을 원하거나 매스마켓(Mass market) 진출이 쉬운 중대형 서점과 플랫폼을 원하는 독립작가들도 많아지고 있다.
독립출판의 산업과 문화적 가치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지금부터는 독립출판이 ‘개인출판(Self publishing)’이라는 제작 관점에서 어떻게 제작되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개인출판을 통한 제작 프로세스(종이책과 전자책 모두 해당)는 상업출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가 ‘스스로’ 많은 프로세스를 진행하기 때문에 편리함과 복잡함이 공존한다. 개인출판의 성장을 이끄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출판 제작 기술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개인과 소수 그룹의 창작물을 책의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원고 편집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어도비 인디자인(Adobe InDesign), 쿼크익스프레스(QuarkXPress) 등 전문적인 출판 프로그램도 있고, 아래아한글, MS워드 등 일반 문서 제작 프로그램도 원고 편집에 사용된다. 일반인들의 컴퓨터 활용 능력이 향상되면서 초급 수준은 개인이 직접 다룰 수 있다. 중급 이상의 출판 편집을 원하면 시중의 여러 출판 편집 디자인 교육을 통해 역량을 갖출 수 있다. 무엇보다 개인출판 서비스를 지원하는 플랫폼 사업자들이 직접 저작툴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저렴한 비용을 종이책과 전자책을 제작해주는 전문 대행사들도 여러 곳이 있다. 그리고, 소량 인쇄를 가능하게 만든 주문형 인쇄(Publish on demand, POD)의 수준 개선과 제작 원가 절감도 개인출판 활성화의 핵심 요인이다.
2000년대부터 개인 작가들을 위한 출판 서비스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면서 국내 독립출판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세계 출판 시장을 좌우하고 있는 아마존은 크리이에트 스페이스(Create space)를 통해서 자체 출판사업을 시작했었다.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개인 블로그북, 사진과 글을 결합한 포토북, 여행 후기를 엮은 가이드북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출판물이 제작되었고 아마존 스토어에서 판매되었다. 초기에는 개인 만족을 위한 출판 서비스가 주력이었지만, 상업성이 높게 평가된 타이틀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이를 통해 기성 중대형 출판사에서 연락해서 직접 계약하는 경우도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종이책 제작과 유통에 따른 비용과 관리 부담을 아마존의 POD 서비스를 통해 해결하는 중소형 출판사도 늘어났다. 이후, 개인출판이 상업출판의 성격까지 포함하면서 아마존은 킨들 전자책 사업으로도 개인출판 모델을 접목시켜갔다. 이렇게 등장한 아마존의 KDP(Kindle Direct Publishing)은 개인 작가들에게 보다 편리하고 높은 인세율 보장, 강력한 마케팅 지원 등으로 전자책 시장으로 다수의 작가들이 활발하게 플랫폼에 들어오고 있다. 아마존 킨들에서 판매되고 있는 전자책의 40% 정도는 KDP로 제작되고 있다.
개인 작가는 KDP 프로그램에서 작가 등록을 마치면 30분 정도 만에 킨들 버전의 전자책을 만들고, 개인 출판사 및 ISBN 등록을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다. 종이책이 있는 전자책의 경우, 판매시 수익 배분율은 아마존이 통상 65%를 차지하고 나머지를 출판사와 작가가 양분하는 구조다. 아마존과 직접 계약하는 KDP를 통하면 작가는 70%의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는 애플이 앱스토어에 등록하는 앱 개발자에게 제공하는 수익 배분율과 동일하다. 개인 전자책 출판의 수익 구조를 앱 비즈니스 모델에 적용한 것이다. 최근 KDP는 판매 내역(sales data)를 고객의 구매시점과 동 시간대에 작가에게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셀프 퍼블리싱 작가는 아마존의 세일즈 대시보드(sales dashboard)를 통해 매출과 정산 내역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들에게 투명하고 인세 정산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국내에도 개인출판 플랫폼이 여러 곳이 서비스 중이며, 종이책과 전자책 서점 사업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종이책 소량 주문 제작, 전자책 이펍 제작 대행을 하는 전문 사업자와 프리랜서도 시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우선, 2011년부터 시작한 교보문고의 퍼플(PubPle)은 누구나 손쉽게 책을 출간할 수 있는 개인 출판 서비스다. 출판사에 투고되는 원고의 상당수가 거절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인 작가, 파워블로거, 전문 학술서 저자 등이 퍼플 서비스를 통해 직접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출판하고 있다. 퍼플은 해당 홈페이지에서 작가등록 계정을 만들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관리자의 승인을 통해 등록이 완료되면, 마이 퍼플(MY Pubple)을 통해 전용 디자인이 적용된 자체 저작툴을 이용해서 PDF 파일로 출판 원고를 완성할 수 있다.
퍼플 POD 방식으로 출간되는 종이책은 교보문고 온·오프라인 매장과 제휴 채널에서 검색, 진열 및 판매가 가능하다. POD 판매단가는 판매신청 승인 후 선택한 템플릿 옵션(제작사양)에 따라 정해진다. 종이책 판매에 따른 수익 배분시 작가는 20%의 인세를 보장받는다. 정산 내역은 요일별로 작가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전자책 제작과 유통은 제휴 사이트인 e퍼플(epubple)을 통해서 진행되고, 작가는 전자책 판매시(10개 이상의 국내 전자책 서점 유통) 정가의 20%를 인세로 받을 수 있다.
2014년부터 시작한 부크크(Bookk)는 온라인 출판 플랫폼으로 개인 창작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일반인을 위한 책만들기(종이책과 전자책)와 전문 작가를 위한 작가 서비스를 제공한다. ‘책만들기’의 순서는 원하는 책 형태 선택, 원하는 규격/표지 재질/날개 여부 선택, 페이지 수 입력 후 가격 책정, 원고 등록(표제/부제, 저자명 작성, 도서 제작목적 선택, 표지 디자인 선택, 소비자 가격 입력, ISBN 등록(무료 대행), 책 정보 확인 및 카테고리 선택, 5일 내로 전체 원고 사항 확인/편집 및 승인 여부 결정, 출판 완료의 순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작가 서비스’는 출판 관련 외주 업체들의 포트폴리오를 통해 작가가 원하는 업체를 선정해서 책을 만들 수 있다. 일정 금액을 내면 고급표지, 표지 디자이너, 내지 디자이너, 교정교열 관련 고급 템플릿 사용 및 전문가들과 협력할 수 있다. 작가 서비스 순서는 상품 목록 확인, 작업 기준 확인, 상품 선택 후 선 결제, 작가서비스 구매, 진행 상태 확인, 시안 확인, 판매자와 조율(분쟁조정), 조율 후 최종 결정, 책만들기 클릭, 구입한 디자인에서 상품 선택, 출판 완료의 순으로 진행된다. 홈페이지에 있는 서점 코너를 통해서 부크크에서 제작한 책을 편리하게 구입할 수도 있다. 현재 6천여 명의 작가가 활동 중이고, 승인된 도서는 6천여 개가 있다. 부크크는 카카오 브런치(Brunch)와 제휴를 통해 서비스 채널을 확장시키고 있다. 브런치 작가는 30개 이상의 글을 발행하면, 이를 출판 양식에 맞는 원고 형식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글을 가지고, 부크크에 접속해서 브런치 작가임을 인증하면 출판 신청을 편리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전문 개인출판 플랫폼과 대형 포털사의 협력은 출판 생태계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아마존, 교보문고, 부크크 이외에도 개인출판 제작을 지원하는 플랫폼(저작툴 포함)은 반스앤노블 프레스(Barnes&Noble press), 애플의 아이북스 오써(iBooks Author), 코보의 라이팅 라이프(Kobo Writing Life), 룰루닷컴(Lulu), 이슈(Issuu) 등 해외 서비스와 한글과컴퓨터의 위퍼블(Wepubl), 에스프레소북(Espressobook), 북랩(Booklab) 등 국내 서비스도 주목받고 있다. 그리고, 개인출판의 새로운 혁신을 불러온 에스프레소북머신(Espresso Book Machine)도 빼놓을 수 없다. 고속 프린터와 제본기를 결합한 소형 인쇄장치로 즉석에서 5~10분 내에 일반 단행본 책 한권을 제작할 수 있다. 본체와 연결된 네트워크에서 원하는 종이책 PDF 파일을 선택하거나 직접 원고를 등록하고 제작 버튼을 누르면, 이후 모든 과정은 자동으로 진행된다. 서점에 책을 쌓아두고 판매하는 것보다 재고 관리 부담이 낮아지고, 품절판 복간을 원하는 독자의 만족도를 높여주고 있다. 개인 작가도 신선한 출간 경험을 얻을 수 있고, 소량 주문 제작으로 독자들의 초기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디문화 컨셉의 독립출판 정신과 셀프 퍼블리싱 플랫폼 기반의 개인출판 모델은 갈수록 미래 출판의 대안이 되고 있다. 출간 경험을 갖고 싶거나 출판업계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직접적인 서비스를 지원하는 전문 업체들도 생기고 있고, 누구나 쉽게 독립출판의 길을 걸을 수 있게 알려주는 《스스로 독립 출판의 모든 것》(2013), 《처음학교-편집자되기》(2015), 《텀블벅으로 독립출판하기》(2016), 《독립출판 제작 스터디》(2016), 《인디자인 독립출판 워크숍》(2018) 등 전문 강좌와 《지금 여기 독립출판》(프로파간다, 2013), 《우리, 독립출판》(북노마드, 2016) 등 가이드북도 다수 출간되고 있다.
개인출판 방식으로 독립출판 정신을 지향하는 콘텐츠 생산자들은 디지털 미디어 발전에 따른 텍스트와 이미지의 수용 능력이 익숙한 층이다. 독립출판의 자생력은 규격을 깨는 다양성에서 나온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많지만, 오히려 그것이 독립출판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다. 출판의 문외한으로 어렵게 책을 만들던 시대는 끝났다. 대부분의 개인출판 플랫폼은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제공하고, 출판 전문가와 매칭하는 서비스도 지원한다. 독립출판물만 판매하는 전문 서점과 서울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UNLIMITED EDITION) 행사 등 각종 독립출판 커뮤니티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종이책과 전자책을 넘나들며 각자의 개성을 살린 출판물은 작가의 만족에만 그치지 않고, 독립출판 제작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미디어 생산과 수용, 전파는 마이크로(micro)와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시대로 진입했다. 독립 작가들은 스스로 문제 해결할 수 있는 플랫폼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즐겨한다. 이를 통해 독립출판에 대한 대중의 시선을 끌어낼 것이다. 기성 출판사도 독립 작가를 현재의 시선으로 보지 말고, 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협력의 대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출판계에서 담아내기 어려운 기발한 아이디어를 접목하고, 새로운 기획 출판을 위한 실험과 도전의 영역으로 인식했으면 좋겠다. 끝.
'외부 매체 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아마존 북스(Amazon Books)를 말하다. (해외출판동향, 2018-05) (0) 2018.05.16 아마존 국내 진출에 따른 출판업계 영향과 대응 전망 (기획회의, 462호) (0) 2018.05.13 출판 콘텐츠 산업에서의 공정상생 (엔콘텐츠, 18년 3~4월호) (0) 2018.02.22 미국의 독립서점은 어떻게 부활했을까? (기획회의, 458호) (0) 2018.02.22 전자책 시장의 주요 흐름과 출판 생태계의 방향 <출판문화-2017년 10월호> (0) 2017.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