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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책 콘텐츠 플랫폼과 출판
    외부 매체 기고 2020. 3. 31. 23:46

    오늘날 거의 모든 산업에서 기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관계 변화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변화가 촉발된 원인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서 찾을 수 있다. 출판 생태계도 예외는 아니다. 종이책 중심의 출판 제작과 유통 방식도 전자책과 플랫폼을 통한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다. 여전히 종이책이 출판 콘텐츠 시장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뉴미디어 시대에 웹소설과 웹툰의 급성장과 각종 미디어 콘텐츠의 활용 시간이 늘어나면서 종이책 시장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사람들의 콘텐츠 이용 시간을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시장에서의 성패가 좌우되고 있다.  
    국내 전자책 시장이 해외에 비해 더딘 성장률을 보이고 있지만, 최근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 서비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조금씩 반등하는 추세다.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구독경제 시대가 열리면서 단권 구입이 아닌 정액제 방식으로 전자책을 특정 플랫폼에서 이용하는 독자층이 두터워지고 있다. 소유에서 소비의 시대로 이동하면서 전자책도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이 소비하고 싶은 독자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이미 넷플릭스(Netflix, 비디오), 스포티파이(Spotify, 오디오), 아마존 킨들 언리미티드(Amazon Kindle Unlimited, 텍스트)에서 볼 수 있듯이 서브스크립션 서비스 모델은 콘텐츠 사업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전자책 콘텐츠 플랫폼의 출판사업 현황

    국내 전자책 콘텐츠 플랫폼도 새로운 변화를 다각도로 추진하고 있다. 서브스크립션 서비스의 대중화와 유명 작가 및 공모전을 통한 종이책 출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존 종이책 사업자들의 영역으로 그 경계를 넘어가고 있다. 우선,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는 밀리의 서재, 리디셀렉트, 교보문고 샘(sam), 예스24 북클럽 등 시장을 주도하는 플랫폼들이 적용하고 있다. 서비스 가능한 콘텐츠 종수를 늘리고, 큐레이션(curation)을 강화하면서 유료 회원수 늘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유명 작가와 직접 계약해서 종이책을 출간하거나 공모전을 통해 발굴한 수상작을 출간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밀리의 서재는 2019년 10월에 조남주, 김초엽, 정용준 작가 등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 『시티픽션』을 시작으로, 김중혁 작가의 장편소설 『내일은 초인간』을 2019년 12월 회원들에게 한정판으로 선공개했다. 지난 2월에는 김영하 작가가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7년만에 낸 장편소설 『작별 인사』를 기간 한정으로 선공개했다. 『작별 인사』는 밀리의 서재 오리지널 종이책 정기구독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세번째 종이책으로, 그의 전작들에서 다루지 않았던 SF 장르의 소설이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인간이 혼재된 2030년의 평양에서 살고 있는 17세 소년 철이가 어느날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낯선 곳으로 끌려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오리지널 종이책 정기구독은 밀리의 서재가 2019년 10월 런칭한 전자책과 종이책 결합 구독 서비스다. 월 15,900원에 밀리의 서재가 보유한 5만 권의 전자책은 무제한으로 보고, 두 달에 한 권씩 오리지널 종이책을 받아서 소장할 수 있다. 배우 박정민이 직접 읽은 오디오북도 밀리의 서재에서 제공된다. 책 표지 디자인은 테이프아티스트인 조윤지 작가가 작업했는데, 색색의 테이프를 이용해서 『작별 인사』의 특징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정기구독자들에게는 활판 인쇄를 적용한 필사노트인 ‘김영하의 서재’ 굿즈도 제공하고 있다. 『작별 인사』는 밀리의 서재와 단독 공개 계약이 만료되는 5월 이후에 정식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밀리의 서재는 3월 말에 배명훈 작가의  신작 SF 소설 『빙글빙글 우주군』을 공개했다. 데뷔 15년을 맞은 배명훈 작가가 여섯번째로 선보이는 장편소설로 밀리 오리지널로 공개하며 추후 일반 서점에서도 종이책으로 만나볼 수 있다. 밀리의 서재는 향후 김훈 작가의 신작 판타지 소설, 백영옥 작가 신작 에세이가 정기구독 서비스로 제공될 예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교보문고는 매년 스토리공모전을 통해 발굴된 대상과 단편 우수상 모음집을 종이책으로 직접 출간하고 있다. 조예은 작가의 『시프트』, 김펑 작가의 『고시맨』, 황세연 작가의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 등이 대표적이며 종이책 출간 이후 영상화 판권 판매 협의도 진행되고  있다. 2018년부터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을  매년 종이책으로 출간하고 있다. 교보문고는 웹소설 연재 플랫폼 ‘톡소다’의 자체 공모전과 ‘스토리 크리에이터’ 과정을  통해 발굴되는 작품도 직접 출간하고 있다.  
    리디북스는 2015년에 ‘헬로월드’라는 지식문고 시리즈를 통해 자체 출간을 시작했었다. 일반 단행본의 20% 분량으로 빠르고 쉽게 하나의 주제를 이해하도록 돕는 입문서로 인기가 많았다. 월정액 구독서비스인 리디셀렉트에 선보일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면서 장강명 작가의 SF소설 『노라』를 첫 오리지널 콘텐츠로 출간했다. 이후 편혜영 작가의 『우리와 가까운 곳에』, 백영옥 작가의 『어제의 이별학』 등이 공개되었다. 2018년 12월에 사이먼앤슈스터와 판권 계약을 체결한 『공포』를 전자책으로 독점 출간했다. 
    웹소설에서 이어 단행본 전자책도 서비스하는 카카오페이지도 ‘연담L’이라는 출판 브랜드를 론칭했고, 출판사 라곰과의 협업을 통해 종이책 『암흑검사』를 2019년 10월에 출간했다. 일반 도서 분야의 신인 작가 발굴을 위한 공모전인 넥스트 페이지(Next page)를 선보였다. 최종 선정된 작품은 MD 및 출판사 편집자 등 콘텐츠 전문가들의 피드백과 출판사 매칭을 거쳐, 카카오페이지 유료 연재를 진행하고 웹툰, 게임, 영상 등 2차 사업 추진을 검토한다. 프로그램에 선정되지 않더라도 접수된 작품 모두에 전문가들의 피드백이 제공된다. 그리고, 카카오페이지는 ‘창비’와 영어덜트 장르문학상을, ‘아작’과는 SF 신인작가 발굴 프로젝트 등을 공동 진행하면서 기성 출판사와 함께하는 출판사업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전자책 콘텐츠 플랫폼의 출판사업 이유와 전망

    전자책 콘텐츠 플랫폼은 왜 직접 출판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일까? 전자책 유통만으로는 수익성 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업 전략은  좀 더 확장된 의미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첫째, 자체 출판 사업으로 인해 기성 출판사들과의 충돌 우려도 있지만, 작가들에게 양질의 작품을 출간할 수 있는 새로운 채널 기능을 제공한다. 김영하 작가가 『작별 인사』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늘 오래 무언가를 하는 것을 지겨워 하는 편이고 하던대로 하는 것을 답답해하는 성격인 나에게도 전자책 콘텐츠 플랫폼은 낯설었지만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느낌에 지금까지 써온 것이 아닌 것을 써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처럼 전자책 콘텐츠 플랫폼은 독자와 더 빠르고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채널로 인식되고 있다. 
    둘째, 서브스크립션 기반 플랫폼의 신규 회원 가입과 기존 회원의 재가입 유도를 위한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 목적이다. 이미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아마존, 애플, 구글 등 서브스크립션 기반 플랫폼은 자체 기획과 투자를 통해 독점 콘텐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다른 플랫폼에서 볼 수 없는 콘텐츠를 많이 확보하는 쪽이 회원 유지에 확실한 우위를 가질 수 있다. 기존 콘텐츠 제작사를 통한 콘텐츠 수급은 결국 독점적이지 않으면 큰 차별화는 없다. 전자책 콘텐츠 플랫폼의 출판물 제작과 유통은 비디오와 오디오 시장의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 전략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전자책은 작가와 직접 계약하지만, 종이책은 기존 출판사와 협력하는 구조를 택하면서 시장 내 충돌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다. 특히, 전자책을 먼저 출간하면서 독자들의 반응을 사전에 확인하고, 이후 종이책 출간시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도 시너지 효과로 볼 수 있다.
    셋째, 출판을 통해 OSMU(One Source Multi Use) 사업 확장에 기반을 다지고 본격적인 IP(Intellectual Property, 지적재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목적이다. 원작이 출간물 형태로 있는지 여부는 영상 기획 제작사들에게 중요한 선택 기준이다. 출간물의 판매량과 독자 호응을 통해 향후 멀티유즈 콘텐츠의 흥행을 미리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이책뿐만 아니라 웹소설과 웹툰을 포함한 다수의 전자책 콘텐츠가 영화, 드라마, 공연, 게임 등의 원천 스토리로 판권 판매가 되고 있다. 시놉시스 수준의 원고만 가지고 원작을 각색하는 건 그만큼 위험 요인이 높다. 출판물은 최대한의 완성된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주제와 배경, 인물과 사건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우 판권 판매 외에 직접 투자를 통한 수익 실현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따라서, 밀리의 서재, 리디북스, 카카오페이지 등 대형 전자책 콘텐츠 플랫폼들은 자체 출판과 IP 사업에 투자하면서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자책 콘텐츠 플랫폼의 출판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속단하지 어렵지만, 자체 출판기획과 제작 역량을 계속해서 키워갈 것으로 본다. 모바일 기반의 콘텐츠 제작과 유통 환경이 일반화되면서 자체 출판은 플랫폼 사업자의 필수 전략이 되었다. 유통 플랫폼이 콘텐츠를 제작하고, 콘텐츠 사업자가 유통 플랫폼을 구축하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사업 모델의 경계가 사라지고, 소비자를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 관점에서 전자책 콘텐츠 플랫폼의 출판 사업은 매력적인 영역이다. 기존 출판사와의 협력 관계는 유지하겠지만, 데이터 기반의 출간 의사결정과 자금 투자를 통해 보다 강력한 출판 사업을 추진할 것이다. 이를 통해 서브스크립션 서비스 모델과 큐레이션, IP 사업은 선순환을 그리며 플랫폼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결국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시장 변화와 전망속에서 출판사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무엇보다 저자와의 출판권과 2차적저작물에 대한 계약 관계를 철저하게 정리해야한다. 제작된 출판 콘텐츠를 플랫폼에 공급하거나,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려고 할 때 저자를 연결하는 등 다양한 비즈니스 관계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과 적대적인 관계로 대응할 필요가 없다. 플랫폼도 아마존처럼 출판사업 조직을 직접 갖추고 셀프 퍼블리싱(self publishing)부터 상업 출판까지 하지 않는 이상, 기존 출판사를 배제한 출판 사업을 추진하는데 한계가 많다. 특히, 종이책 제작과 마케팅은 기존의 프로세스를 전면적으로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상호 협력을 통한 출판이 서로에게 유리하다. 기존 사업에서의 경계는 사라지고 있지만, 둘이 만나서 새로운 경계를 만들고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 [기획회의, 510호 원고]

    류영호 | 교보문고 콘텐츠사업단 부장
    aplus@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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