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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서점의 큐레이션 (기획회의 430호)
    외부 매체 기고 2017. 4. 7. 09:37

    미국 서점의 큐레이션


    정보과잉의 시대에 의미있고 가치있는 정보의 획득과 공유가 중요해짐에 따라 온라인에서의 큐레이션(Curation)이 주목받고 있다. 큐레이션이란 단순히 자동으로 정보를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가치 있는 콘텐츠를 찾아 분석하고 배포하는 것이다. 수많은 콘텐츠 중 의미 있는 콘텐츠를 발굴하고 가공해 공유하는 큐레이터(Curator)의 역할도 중요하다. 『큐레이션(Curation Nation)』의 저자인 스티븐 로젠바움(Steven Rosenbaum)도 “큐레이션은 인간이 수집, 구성하는 대상에 인간의 질적인 판단을 추가해서 가치를 높이는 활동이다”라고 정의하면서 인간(큐레이터)의 중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서점의 큐레이션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까? 기본적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 채널로 구분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아마존의 위세가 대단하지만 독자의 절반 이상은 오프라인 서점을 통해서 책을 구입한다. 오프라인 서점과 큐레이션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큐레이션의 전형적인 서비스 모델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은 평대를 구성하는 담당 직원들의 역량을 기반으로 독자와의 면대면(face-to-face) 큐레이션이 가능하기 때문에 친밀도는 더 강하다. 오프라인 진열 매대도 입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어서 책의 발견성을 높이고, 충동 구매율도 높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온라인 서점은 독자의 관심사와 구매 패턴을 분석해서 좋아할만한 책을 웹이나 모바일을 통해 보여준다. 데이터에 입각한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독자를 향한 정밀한 큐레이션이 핵심 목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s)와 소셜미디어(Social media)의 급속한 성장에 따라 이를 활용한 독서 커뮤니티인 소셜 리딩(Social reading)도 활발하다. 출판사와 책 광고를 통해 이용자의 성향에 따라 적합한 책을 큐레이팅한다. 아직 전문 서점에 비해 큐레이션의 수준은 낮은 편이지만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이용자의 데이터가 축적되고, 빅데이터 처리 기술과 전문가들의 큐레이팅이 접목되고 있어서 만족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면, 미국에 있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서점의 큐레이션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 오프라인 서점의 큐레이션 사례


    우선, 오프라인 서점을 대표하는 반스앤노블은 오랫동안 내부 직원들의 전문성을 활용한 도서 추천이 꾸준하다. 1873년 설립된 이후, 미국 내 약 650여 곳에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 중인 반스앤노블은 기본적으로 도서 분야별로 신간/베스트/MD(Merchandiser) 추천 코너를 운영한다. 독자에게 추천과 큐레이션을 제공할 때 분야별 추천이 주된 방법으로 활용된다. 대형 체인형 서점의 경우에는 판매가 중심이 되는 단방향의 매대 구성, 언론을 통한 광고, 각종 베스트셀러 목록 등이 표준으로 인식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전사 관점에서 규격화된 추천과 큐레이션을 추진하는데 이는 매장의 통일성을 위한 전략이다.


    최근 반스앤노블은 라이프 스타일 컨셉 스토어 형태의 매장을 오픈했다. 일본 츠타야 서점과 유사한 형태로 책과 다른 상품을 복합 진열 방식하거나 식음료 코너를 고급화했다. ‘오직 책만을 위한 백화점’을 지향했던 반스앤노블이 고객의 취향을 저격하기 위한 맞춤형 추천으로 변화 방향을 잡았다. 세계적으로 오프라인 대형 서점은 책을 중심으로 인접 상품군과 연결된 ‘복합편집형 큐레이션’이 대세가 되고 있다. 


    반스앤노블은 지난 12월 초, 미국 뉴욕의 이스트체스터 매장을 오픈하면서 새로운 컨셉을 제시했다. 식사가 가능한 레스토랑과 맥주와 와인을 판매하는 바(Bar)를 구성했다. 로컬 인테레스트(Local interests)라는 타이틀로 지역 독자들에게 밀착된 책 추천 코너도 큐레이션 형태로 구성했다. 어린이를 위한 스토리타임(Storytime)은 매장 내 동화구연 코너로 어아이들과 부모들에게 특화되어 있다. 최근 경영 위기에 처한 반스앤노블은 복합문화 공간을 통한 큐레이션 플랫폼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오프라인 서점의 큐레이션의 전형적인 사례는 독립서점의 운영에서 찾을 수 있다. 대형 서점의 분야별로 추천 방식을 탈피해서 창업자의 성향에 맞춰 전문화해서 개점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아이들와일드 서점(Idlewild Bookstore)은 여행서, 미스터리어스 서점(Mysterious Bookshop)은 미스터리, 맥널리 잭슨(Mcnally Jackson)은 문학, 리졸리서점(Rizzoli BookStore)은 예술과 건축 분야의 책으로 유명하다. 


    오프라인 독립서점은 지역 독자들의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의 변화에 주목한다. 책을 통한 단골 독자들과의 친밀한 소통은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서점 운영자들은 기본적으로 책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제안 역량을 갖고 있다. 이것은 전문 분야 도서에 대한 큐레이션 완성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최근 다수의 독립서점은 자사의 온라인 사이트 또는  SNS와 연계해서 독자군을 확대하고 큐레이션을 선보이고 있다. 


    눈여겨 볼만한 곳으로 원그랜드북스(One Grand books)가 있다. 주요 직업군을 구분해서 인기있는 책을 큐레이팅하는데 큐레이터 카테고리에는 배우, 작가, 미술가, 요리사, 디자이너, 방송인, 정치인 등 각계 전문가들이 있다. 그들이 직접 추천하는 10종의 책들이 간략한 추천평과 함께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동시 진열된다. 동종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나 진출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추천서로 인기가 많은 편이다. 외부 전문가들과의 협력이 돋보이는 큐레이션 모델이다. 


    중고책 전문 서점으로 유명한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은 추천과 큐레이션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독특한 직원 채용 방식을 운영하고 있다. 즐겨읽은 분야, 주요 책과 저자에 대한 역사와 사회적 배경 등을 주제로 퀴즈 형식의 채용 인터뷰를 진행한다. 직원들이 수시로 책을 읽고 지역 독자들을 취향에 맞는 큐레이션을 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소양을 중요시한다. 그만큼 독자와 직접 만나고 상담하는 서점 직원의 역량은 큐레이션을 수준을 좌우한다. 미국 서점협회에서 운영하는 인디바운드(IndieBound)는 지역의 독립서점 회원들을 위해 신뢰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 목록을 발표한다. 독립서점을 위한 일정 수준의 큐레이션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다. 몇몇 독립서점은 전국과 지역의 베스트셀러를 비교해서 별도의 큐레이션 도서 코너를 구성하기도 한다. 


    미국 온라인 서점의 큐레이션


    미국 출판시장에서 온라인 채널의 점유율은 매년 상승하고 있다. 그중에서 미국의 신간 유통에서 40% 정도의 점유율을 보이는 아마존의 시장지배력은 압도적이다. 반스앤노블, 월마트 등 대형 유통사들도 온라인 채널이 있지만, 출판 유통은 아마존과 대적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미 대부분의 대형 온라인 쇼핑몰은 자동화된 큐레이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아마존도 특정 책을 클릭했을 때 해당 책을 구매한 독자들이 선택한 다른 책을 추천해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1990년대 아마존이 도입한 북매치(Bookmatch)는 웹사이트 방문 고객들의 페이지 오픈 방식과 구입 도서에 대한 평가를 근거로 취향에 맞는 분야와 유형을 판단한다. 이를 기준으로 고객들이 아마존을 방문할 때에 좋아할만한 책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채택했다. 기술의 발전과 투자는 일반적인 추천을 데이터 기반의 큐레이션으로 진화시켰다. 


    고객은 북매치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쉽게 선택하고 구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추천 시스템을 통해 아마존은 매출의 30% 이상을 성장할 수 있었다. 아마존이 추천 알고리즘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창업자(제프 베조스)의 데이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있다.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성향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큐레이션은 아마존의 핵심 경쟁력이다. 


    2015년 11월, 아마존은 아마존북스(Amazonbooks)를 오픈하면서 오프라인에 정식으로 진출했다. 기본적인 매장 진열 구조는 온라인의 독자 별점 평가, 키워드별 진열, 지역 출신 작가 또는 지역 독자들에게 어울리는 책을 추천하는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한 ‘하이브리드 큐레이션(Hybrid curation)’을 선보이고 있다. 아마존 프라임(Prime) 회원이면 책 가격은 아마존의 온라인 판매 가격과 동일하다. 아마존은 책 이외에도 전자책 단말기 ‘킨들’, 태블릿 PC ‘파이어’, 음성인식 단말기 ‘에코’ 등 자체 디지털 디바이스도 판매한다. 아마존은 온라인을 통해 확보한 상품별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자사의 큐레이션 시스템을 오프라인으로 확대하는 공간으로 아마존북스를 확장시키고 있다. 


    아마존이 활용하고 있는 데이터는 단순히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를 넘어 수천만 명의 고객들이 작성한 리뷰와 아마존 에디터들이 선정한 책도 포함된다. 많이 팔리지 못한 책이라도 실제로 책을 읽은 독자들이 좋은 평점을 줬다면 아마존북스에서 큐레이션되어 만날 수 있다. 아마존북스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가진 강점을 최적화해서 옴니채널(Omni-channel)의 접점의 역할을 한다. 전체적인 고객들의 취향을 맞출 수 있는 키워드와 카테고리를 만들어 책을 진열하고 판매한다. 


    온라인 서점의 큐레이션은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적중률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자사의 웹사이트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만으로는 깊이 있는 추천과 큐레이션에 한계가 있다. 아마존은 소셜리딩 사이트로 유명한 굿리즈(Goodreads)를 통해 애독가들이 등록하는 서평과 별점 평가 등을 기반으로 세분화된 데이터를 병행해서 확보하고 있다. 모바일 네트워크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인해 ‘소셜 큐레이션(Social curation)’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자연스럽게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등 SNS와 연계해서 큐레이션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있다. 온라인의 특성상 큐레이션의 가치는 결국 양질의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가공하느냐에 달려있다. 


    서점이 독자의 마음을 알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한 정보는 상품 판매 동향을 보여주는 주문과 결제 데이터다. 장바구니(Wishlist)에 넣어둔 상품 목록도 비중이 높다. 서점이 보유한 책의 수량은 제한적이지만, 독자가 책을 발견하고 구입하고 읽는 활동 패턴은 무한하다. 세계 출판 시장의 판도를 좌우하는 미국 서점의 큐레이션 모델은 직원과 전문가 추천 방식에서 소셜 큐레이션으로 이동하고 있다. 작가와 출판사, 도서관 등 출판 생태계의 참여자들도 적극적으로 관련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서점이 모든 독자들의 취향을 이해하고 책을 추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서점 큐레이션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식정보의 홍수에서 책을 발견하는 수고를 덜어주고, 책과 책 또는 책과 다른 상품과의 의미있는 연결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와 콘텐츠 시장의 성장기에서 책이 펼칠 수 있는 선택지가 줄어들고 있다. 큐레이션은 출판유통 시장에서 독자들의 마음을 관통하는 최선의 답안지가 될 것이다. <끝>


    - 류영호(교보문고 콘텐츠사업단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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