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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인생의 한 수를 두다> (장석주 지음, 한빛비즈)
    나름대로 북리뷰 2013. 9. 7. 09:4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바둑의 정의는 '두 사람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여러 가지 규약에 따라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한 점씩 서로 번갈아 놓고 경기의 끝 판에 이르러 각자가 차지한 ‘집’의 수효를 계산하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를 말한다. 가로와 세로에 각 19줄씩 그어진 선을 따라 흑백의 돌들이 집을 짓는 다양한 수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변화가 일어난다. 최근 국내에서 바둑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있다. 바로 <미생>이라는 책이다. <이끼>의 작가로 유명한 한국 만화계의 대표적인 스토리텔러 윤태호의 신작이다. 미생은 즉, 아직 살아 있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프로기사만을 목표로 살아가던 한 청년(장그래)이 입단에 실패하고 일반 회사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 들어가면서 겪는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갔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바둑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그만큼 늘어난 계기 되었다.  


    문장노동자로 자처하는 저자의 책을 여럿 읽은 추억이 있다. 복잡한 세상의 원리를 단문과 장문의 형태로 명료하게 정리하는 매력을 가진 사람이다. 책에는 매 수(바둑의 수)마다 인생의 오묘한 원리를 강약의 조절, 속도의 조절로 풀어가는 비결이 들어있다. 저자는 열 살 때부터 바둑을 접해 기력(棋歷)은 40년을 넘어섰다. 프로의 실력은 아니지만, 바둑 그 자체의 심오한 원리를 이해하면 할수록 가장 재미있는 놀이였기에 지금도 이어오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바둑의 원리이자 진리를 압축한 10가지 비결을 근간으로 바둑과 인생을 반상 위에서 풀어간다. 바로 위기십결(圍棋十訣)이다. 지난 4천년 동양 지혜의 정수가 위기십결에 모두 담겨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특유의 해박한 지식을 시적(詩的) 감성을 더해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해준다. 역시 문장의 고수(高手)다. 

    그럼, <위기십결>은 무엇인가? 

    첫째, 부득탐승(不得貪勝), 이기려면 이기려는 마음을 버리라고 가르친다. 
    둘째, 입계의완(入界宜緩), 승패의 갈림길에서 너무 서두르지 말고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셋째, 공피고아(攻彼顧我), 섣부른 공격은 화를 자초할 뿐이니 나의 약한 곳부터 지켜둔 다음에 공격하라는 뜻이다. 
    넷째, 기자쟁선(棄子爭先), 돌 몇 점을 사석으로 버리더라도 선수를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다섯째, 사소취대(捨小就大),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뜻이다. 큰 것과 작은 것을 정확하게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섯째, 봉위수기(逢危須棄), 위험을 만나면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일곱째, 신물경속(愼勿輕速), 경솔하게 착점하지 말고 신중하게 두라는 뜻이다. 
    여덟째, 동수상응(動須相應), 바둑판 위에 놓인 돌은 그 하나하나에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므로 착점을 하기 전에 자기편 돌의 호응과 상대편의 움직임을 깊이 궁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아홉 번째, 피강자보(彼强自保), 상대방이 강하면 스스로를 먼저 보강해야 한다는 뜻이다. 
    열 번째, 세고취화(勢孤取和), 적이 압도적으로 포진하고 있는 세력 속에서 고립되어 있을 때는 싸우지 말고 화평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바둑의 첫 단추는 착점이다. 저자는 최적의 자리를 찾느라 손을 허공에서 멈춘다고 한다. 바둑은 묘수를 통한 즐거움도 있지만, 상대방과의 경쟁을 통한 여유와 비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는 극기 등 결국 '마음'을 다스리는 힘을 배우는 깊은 철학이 바둑의 진정한 매력이다. 동양에서 만들어진 군자의 도락(道樂)인 바둑은 변화무쌍한 착점들속에서 다양한 변화를 생성하고 소멸을 반복한다. 자신과 주변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존하는 마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난다면 세상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책을 완독하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바둑 한 판의 여유를 찾아야겠다는 각오가 생겼다. 착점의 한 수를 두기 위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할 것이다. <위기십결>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한 선현들의 심오한 유산이다. 하수보다는 고수가 되어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가면 더 의미있을 것이다. 이 책은 내게 그러한 포석과 착점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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