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활성화를 만든 개인출판 플랫폼 (기획회의, 459호)

외부 매체 기고 2018. 2. 27. 19:47

독립출판 활성화를 만든 개인출판 플랫폼 


류영호(교보문고 콘텐츠사업단 차장)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미디어 채널이 확장되면서 사람들은 연결된 모든 미디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출판 생태계도 예외는 아니다. 전문가의 영역이었던 출판 기획과 제작·유통도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출간을 목적으로 하는 작가들은 기성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저렴한 비용으로 종이책과 전자책 출간할 수 있다. 물론, 출판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콘텐츠의 수준과 상업적 성공 여부는 기성 출판과 직접 비교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하지만, 개인이 직접 출판할 수 있는 프로세스는 미디어의 생성과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출판 모델로 자리잡은 상황이다.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출판 콘텐츠 포맷이 확장되고 출판 기회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작가들의 선택지도 넓어지고 있다. 

특히, 출판 콘텐츠의 유통과 소비 채널이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비용 효율성이 강화되고 있다.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거리를 단축시키면서 작가에게는 높은 인세를, 독자에게는 저렴한 가격으로 플랫폼 사업자간의 가치 경쟁도 만만치 않다. 제책의 구조는 동일하나 기성 출판사와 서점 유통 경로를 거치지 않는 출판 활동을 흔히 ‘독립출판(Indie publishing)’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물인 독립출판물은 개인과 소수 그룹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스스로 또는 전문가의 지원을 통해 펴내는 콘텐츠다. 기본적으로는 상업성을 떠나서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것을 다루는 인디(Indie)문화의 범주에 속한다. 즉, 출판계의 인디문화가 독립출판의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독립작가와 제작자는 자신의 주제 의식을 표현할 수 있는 대안적이고 새로운 출판물을 생산하는 방법으로 독립출판을 선택한다. 독자들은 관습적이고 일관된 형식의 콘텐츠가 아닌 소장 가치가 있는 한정판이란 측면에서 독립출판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독립 출판을 위한 법적인 절차는 까다롭지 않다. 종이책의 경우, 개인이나 소수 그룹이 특정 원고를 가지고 인쇄 제작사를 통해서 바로 만들어진다. 소량 인쇄가 가능한 전문 인쇄소를 이용하면 종이와 판형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통상 500부 제작시 100~200만원 내외로 가능하다. 초기 독립출판물은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없이 출간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헌적 보존 기능과 일반 도소매 유통 과정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들만의 출판이라는 철학에서 보면, 그리 필요하지 않은 관행으로 보였다. 그러나, 상업출판으로 진입을 원하거나 매스마켓(Mass market) 진출이 쉬운 중대형 서점과 플랫폼을 원하는 독립작가들도 많아지고 있다. 


독립출판의 산업과 문화적 가치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지금부터는 독립출판이 ‘개인출판(Self publishing)’이라는 제작 관점에서 어떻게 제작되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개인출판을 통한 제작 프로세스(종이책과 전자책 모두 해당)는 상업출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가 ‘스스로’ 많은 프로세스를 진행하기 때문에 편리함과 복잡함이 공존한다. 개인출판의 성장을 이끄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출판 제작 기술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개인과 소수 그룹의 창작물을 책의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원고 편집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어도비 인디자인(Adobe InDesign), 쿼크익스프레스(QuarkXPress) 등 전문적인 출판 프로그램도 있고, 아래아한글, MS워드 등 일반 문서 제작 프로그램도 원고 편집에 사용된다. 일반인들의 컴퓨터 활용 능력이 향상되면서 초급 수준은 개인이 직접 다룰 수 있다. 중급 이상의 출판 편집을 원하면 시중의 여러 출판 편집 디자인 교육을 통해 역량을 갖출 수 있다. 무엇보다 개인출판 서비스를 지원하는 플랫폼 사업자들이 직접 저작툴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저렴한 비용을 종이책과 전자책을 제작해주는 전문 대행사들도 여러 곳이 있다. 그리고, 소량 인쇄를 가능하게 만든 주문형 인쇄(Publish on demand, POD)의 수준 개선과 제작 원가 절감도 개인출판 활성화의 핵심 요인이다. 

2000년대부터 개인 작가들을 위한 출판 서비스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면서 국내 독립출판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세계 출판 시장을 좌우하고 있는 아마존은 크리이에트 스페이스(Create space)를 통해서 자체 출판사업을 시작했었다.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개인 블로그북, 사진과 글을 결합한 포토북, 여행 후기를 엮은 가이드북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출판물이 제작되었고 아마존 스토어에서 판매되었다. 초기에는 개인 만족을 위한 출판 서비스가 주력이었지만, 상업성이 높게 평가된 타이틀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이를 통해 기성 중대형 출판사에서 연락해서 직접 계약하는 경우도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종이책 제작과 유통에 따른 비용과 관리 부담을 아마존의 POD 서비스를 통해 해결하는 중소형 출판사도 늘어났다. 이후, 개인출판이 상업출판의 성격까지 포함하면서 아마존은 킨들 전자책 사업으로도 개인출판 모델을 접목시켜갔다. 이렇게 등장한 아마존의 KDP(Kindle Direct Publishing)은 개인 작가들에게 보다 편리하고 높은 인세율 보장, 강력한 마케팅 지원 등으로 전자책 시장으로 다수의 작가들이 활발하게 플랫폼에 들어오고 있다. 아마존 킨들에서 판매되고 있는 전자책의 40% 정도는 KDP로 제작되고 있다.

개인 작가는 KDP 프로그램에서 작가 등록을 마치면 30분 정도 만에 킨들 버전의 전자책을 만들고, 개인 출판사 및 ISBN 등록을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다. 종이책이 있는 전자책의 경우, 판매시 수익 배분율은 아마존이 통상 65%를 차지하고 나머지를 출판사와 작가가 양분하는 구조다. 아마존과 직접 계약하는 KDP를 통하면 작가는 70%의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는 애플이 앱스토어에 등록하는 앱 개발자에게 제공하는 수익 배분율과 동일하다. 개인 전자책 출판의 수익 구조를 앱 비즈니스 모델에 적용한 것이다. 최근 KDP는 판매 내역(sales data)를 고객의 구매시점과 동 시간대에 작가에게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셀프 퍼블리싱 작가는 아마존의 세일즈 대시보드(sales dashboard)를 통해 매출과 정산 내역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들에게 투명하고 인세 정산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국내에도 개인출판 플랫폼이 여러 곳이 서비스 중이며, 종이책과 전자책 서점 사업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종이책 소량 주문 제작, 전자책 이펍 제작 대행을 하는 전문 사업자와 프리랜서도 시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우선, 2011년부터 시작한 교보문고의 퍼플(PubPle)은 누구나 손쉽게 책을 출간할 수 있는 개인 출판 서비스다. 출판사에 투고되는 원고의 상당수가 거절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인 작가, 파워블로거, 전문 학술서 저자 등이 퍼플 서비스를 통해 직접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출판하고 있다. 퍼플은 해당 홈페이지에서 작가등록 계정을 만들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관리자의 승인을 통해 등록이 완료되면, 마이 퍼플(MY Pubple)을 통해 전용 디자인이 적용된 자체 저작툴을 이용해서 PDF 파일로 출판 원고를 완성할 수 있다. 

퍼플 POD 방식으로 출간되는 종이책은 교보문고 온·오프라인 매장과 제휴 채널에서 검색, 진열 및 판매가 가능하다. POD 판매단가는 판매신청 승인 후 선택한 템플릿 옵션(제작사양)에 따라 정해진다. 종이책 판매에 따른 수익 배분시 작가는 20%의 인세를 보장받는다. 정산 내역은 요일별로 작가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전자책 제작과 유통은 제휴 사이트인 e퍼플(epubple)을 통해서 진행되고, 작가는 전자책 판매시(10개 이상의 국내 전자책 서점 유통) 정가의 20%를 인세로 받을 수 있다. 

2014년부터 시작한 부크크(Bookk)는 온라인 출판 플랫폼으로 개인 창작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일반인을 위한 책만들기(종이책과 전자책)와 전문 작가를 위한 작가 서비스를 제공한다. ‘책만들기’의 순서는 원하는 책 형태 선택, 원하는 규격/표지 재질/날개 여부 선택, 페이지 수 입력 후 가격 책정, 원고 등록(표제/부제, 저자명 작성, 도서 제작목적 선택, 표지 디자인 선택, 소비자 가격 입력, ISBN 등록(무료 대행), 책 정보 확인 및 카테고리 선택, 5일 내로 전체 원고 사항 확인/편집 및 승인 여부 결정, 출판 완료의 순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작가 서비스’는 출판 관련 외주 업체들의 포트폴리오를 통해 작가가 원하는 업체를 선정해서 책을 만들 수 있다. 일정 금액을 내면 고급표지, 표지 디자이너, 내지 디자이너, 교정교열 관련 고급 템플릿 사용 및 전문가들과 협력할 수 있다. 작가 서비스 순서는 상품 목록 확인, 작업 기준 확인, 상품 선택 후 선 결제, 작가서비스 구매, 진행 상태 확인, 시안 확인, 판매자와 조율(분쟁조정), 조율 후 최종 결정, 책만들기 클릭, 구입한 디자인에서 상품 선택, 출판 완료의 순으로 진행된다. 홈페이지에 있는 서점 코너를 통해서 부크크에서 제작한 책을 편리하게 구입할 수도 있다. 현재 6천여 명의 작가가 활동 중이고, 승인된 도서는 6천여 개가 있다. 부크크는 카카오 브런치(Brunch)와 제휴를 통해 서비스 채널을 확장시키고 있다. 브런치 작가는 30개 이상의 글을 발행하면, 이를 출판 양식에 맞는 원고 형식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글을 가지고, 부크크에 접속해서 브런치 작가임을 인증하면 출판 신청을 편리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전문 개인출판 플랫폼과 대형 포털사의 협력은 출판 생태계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아마존, 교보문고, 부크크 이외에도 개인출판 제작을 지원하는 플랫폼(저작툴 포함)은 반스앤노블 프레스(Barnes&Noble press), 애플의 아이북스 오써(iBooks Author), 코보의 라이팅 라이프(Kobo Writing Life), 룰루닷컴(Lulu), 이슈(Issuu) 등 해외 서비스와 한글과컴퓨터의 위퍼블(Wepubl), 에스프레소북(Espressobook), 북랩(Booklab) 등 국내 서비스도 주목받고 있다. 그리고, 개인출판의 새로운 혁신을 불러온 에스프레소북머신(Espresso Book Machine)도 빼놓을 수 없다. 고속 프린터와 제본기를 결합한 소형 인쇄장치로 즉석에서 5~10분 내에 일반 단행본 책 한권을 제작할 수 있다. 본체와 연결된 네트워크에서 원하는 종이책 PDF 파일을 선택하거나 직접 원고를 등록하고 제작 버튼을 누르면, 이후 모든 과정은 자동으로 진행된다. 서점에 책을 쌓아두고 판매하는 것보다 재고 관리 부담이 낮아지고, 품절판 복간을 원하는 독자의 만족도를 높여주고 있다. 개인 작가도 신선한 출간 경험을 얻을 수 있고, 소량 주문 제작으로 독자들의 초기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디문화 컨셉의 독립출판 정신과 셀프 퍼블리싱 플랫폼 기반의 개인출판 모델은 갈수록 미래 출판의 대안이 되고 있다. 출간 경험을 갖고 싶거나 출판업계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직접적인 서비스를 지원하는 전문 업체들도 생기고 있고, 누구나 쉽게 독립출판의 길을 걸을 수 있게 알려주는 《스스로 독립 출판의 모든 것》(2013), 《처음학교-편집자되기》(2015), 《텀블벅으로 독립출판하기》(2016), 《독립출판 제작 스터디》(2016), 《인디자인 독립출판 워크숍》(2018) 등 전문 강좌와 《지금 여기 독립출판》(프로파간다, 2013), 《우리, 독립출판》(북노마드, 2016) 등 가이드북도 다수 출간되고 있다.  


개인출판 방식으로 독립출판 정신을 지향하는 콘텐츠 생산자들은 디지털 미디어 발전에 따른 텍스트와 이미지의 수용 능력이 익숙한 층이다. 독립출판의 자생력은 규격을 깨는 다양성에서 나온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많지만, 오히려 그것이 독립출판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다. 출판의 문외한으로 어렵게 책을 만들던 시대는 끝났다. 대부분의 개인출판 플랫폼은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제공하고, 출판 전문가와 매칭하는 서비스도 지원한다. 독립출판물만 판매하는 전문 서점과 서울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UNLIMITED EDITION) 행사 등 각종 독립출판 커뮤니티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종이책과 전자책을 넘나들며 각자의 개성을 살린 출판물은 작가의 만족에만 그치지 않고, 독립출판 제작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미디어 생산과 수용, 전파는 마이크로(micro)와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시대로 진입했다. 독립 작가들은 스스로 문제 해결할 수 있는 플랫폼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즐겨한다. 이를 통해 독립출판에 대한 대중의 시선을 끌어낼 것이다. 기성 출판사도 독립 작가를 현재의 시선으로 보지 말고, 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협력의 대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출판계에서 담아내기 어려운 기발한 아이디어를 접목하고, 새로운 기획 출판을 위한 실험과 도전의 영역으로 인식했으면 좋겠다. 끝. 

posted by 류영호

출판 콘텐츠 산업에서의 공정상생 (엔콘텐츠, 18년 3~4월호)

외부 매체 기고 2018. 2. 22. 19:33

출판 콘텐츠 산업 발전은 창작자에 대한 보다 넓은 해석과 권익 보호에서 시작된다

 

류영호

(현. 교보문고 콘텐츠사업단 차장)

 

일반적으로 출판(出版, publishing)은 저작자의 정신적 활동을 통해서 만들어진 작품, 글, 미술, 사진 등의 저작물을 창의적으로 편집하여 인쇄 또는 전자적 방법에 의해 독자들에게 배포하는 문화적 행위이다. 일반적으로 서적, 잡지, 전자책 등의 발행을 말한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서는 “출판이라 함은 저작물 등을 종이 또는 전자적 매체에 편집, 복제하여 간행물(전자출판물)을 발행하는 행위”를 말한다. 쿠텐베르크 혁명 이후, 수백년을 이어온 종이책 중심의 출판 산업은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과 연계되면서 미디어 콘텐츠 산업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세계 출판 산업은 종이책 시장의 감소와 전자책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시장이 성장하는 추세다.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종이책이 80~90%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스마트폰이 급속하게 보급되었고, 출판 콘텐츠도 전자책과 웹소설과 웹툰 등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출판 콘텐츠의 포맷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속성이 변하고, 유통도 오프라인 서점에서 온라인 서점 또는 모바일 앱스토어(app store)로 시장의 판도 변화도 진행 중이다.

기본적으로 출판의 결과물이 생산과 유통, 소비의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는 창작자의 노력에서 시작된다. 상업적인 가치를 가진 저작물로서 출판을 시작한다면 창작자(저작권자)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과 준수가 필수적이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명시하고 있고, 저작자는 '저작물을 창작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콘텐츠 산업 발전의 시작이자 중심은 창작자다

통상 저작자는 창작자와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그에 부합하는 권리를 확보할 수 있다. 이는 국가가 정한 저작권법에 의해 법적으로 규정되고 보호받을 수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베른 조약(Berne Convention)’ 등에 의거해서 저작자의 권리가 존중된다. 오랜 세월동안 각국의 관련 당국과 법률가, 출판계 전문가들이 협력해서 저작권법은 창작자의 권익 보호를 중점으로 개정되고 있다. 하지만, 순수 창작물은 매년 증가하고 형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출판 콘텐츠 사업 구조도 빠르게 변하면서 창작자의 권익이 오히려 침해되는 사건도 증가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 법이 시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그만큼 사회적 합의 과정과 이해관계자간의 충돌을 풀 수 있는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저작물이 저작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저작물에 대한 투자와 유통을 담당하는 이해관계자가 필요하다. 이들은 투자를 회수하고 이익을 얻기 위해 콘텐츠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이를 위해 창작자와 사업자 간에 사전 체결되는 저작권 계약은 저작물의 유통과 이용에 핵심적인 사항이다. 그런데 국내 출판 저작권 계약은 이러한 계약 당사자 모두에게 공정하고 상생을 위해 체결되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해리포터』시리즈와 『미생』 등 출판 콘텐츠로 시작해서 OSMU(One Source Multi Use) 사업 모델 등에 원천 콘텐츠의 저작권은 더욱 중요해졌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저작물의 부가가치 창출이 생기면서 기대 이상의 경제적 성공이 많아지고 있다. 사전에 원칙적인 계약이 사업자와 창작자간에 진행하지 못해서 추가적인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한국 출판 저작권 계약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 바로 〈구름빵〉 이슈였다. 백 모 작가가 동화책 한권으로 인해 10여 년 간 발생한 관련 매출이 4,000억 원이 넘지만, 작가가 그로 인해 얻은 수익은 1,850만 원이 전부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떠들썩했다. 문제는 당시 작가가 계약 당시 출판사로부터 일정한 대가를 받고 관련 권리를 모두 넘기는 저작권 양도 계약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저작권 양도 계약은 기간이 무기한이고, 대가의 지급은 일시불인 형태가 보통이었다. 저작권 양도 후 저작물의 이용에 따른 경제적 가치가 급증해도 창작자는 추가적인 이익을 얻는 것이 불가능한 계약 관계였다.

이후 분쟁 조정 과정을 통해 출판사 측에서 작가와 맺은 계약서를 수정하고 저작권, 출판권, 2차 저작권에 대한 포기 의사를 밝혔다. 2015년 4월에는 일명 '구름빵 보호법'이라고 불리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매절계약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저작권법의 일부를 개정하고 창작자가 유통업자 등에게 공정한 보상을 법적 권리가 신설된다는 취지였다. 이후, 당시 출판사 직원이었던 사진작가와 공동 저작권자에 대한 이슈로 소송이 있었지만, 2016년 1월에 법원은 최종적으로 책에 삽입된 사진은 사진 작업의 전 과정을 기획하고 실제 담당한 백 모 작가에게만 저작권을 인정했다.

출판계약은 크게 저작권자의 저작권이 이용자에게 넘어가는 ‘저작권 양도 계약’과 저작권자에게 저작권이 유보되는 ‘출판 허락 계약’으로 구분된다. 모두 사업자에 의해 저작자의 책이 출판되고, 그에 대한 일정한 대가가 지급된다는 점에서는 외형상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상당수의 저작자들은 직관적이고 창조적인 창작활동에 전념하면서 법과 계약서 조항 등에는 관심이 없거나 멀리하는 편이다. 그래서, 저작권이나 관련 계약에 관한 지식이 사회 일반인 수준이거나 부족한 경우, 주변에 법적인 조언을 해줄 전문가나 지원받을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사업자들은 사업을 영위하면서 저작자 또는 다른 사업자와의 계약 또는 분쟁사례에서 경험과 지식을 얻을 기회가 많은 편이다. 스스로의 경제력으로 비교적 쉽게 전문가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저작자와 사업자 사이의 저작권 계약 관계에 대한 지식 불균형은 우월한 지위에 따른 불공정한 계약 체결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창작자에 대한 보다 넓은 의미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출판 콘텐츠 산업의 변화 양상을 토대로 보면, 창작자를 지식과 감성을 글로 쓴 저자(著者)로 한정시키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이슈다. 출판 콘텐츠의 속성상 저자의 기본 원고는 출판 기획 과정에 참여하는 편집자와 디자이너 등 포함될 필요가 있다. 출판 산업의 중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창작자를 광의(廣義)적으로 재정의하고 관련 조항을 다시 풀어보자는 의미다. 물론, 원천적인 저작권은 저자의 소유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항이다. 창작자에 대한 개념을 확대하고 그에 부합하는 시대적 변화를 적용한 저작권법 개선 요구가 출판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국내 저작권법 개정의 역사는 ‘저작자와 저작인접권자의 권리 강화를 위한 법 개정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저작물 이용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출판자’의 권리에 대한 배려는 실질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많다. 저작인접권은 저작물을 공중에 전달하는 데 있어서 자본 투자 및 창의적인 기여를 한 자에게 부여하는 권리다. 이 측면에서 볼 때 실연자, 음반사업자, 방송사업자 등 기존 저작인접권자와 출판자 사이에 차등을 두는 것으로 출판계는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출판 콘텐츠 창작에 대한 저작인접권은 저작권법 규정으로 출판사(출판자)에게 판면권(版面權) 부여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판면권은 판면(책의 편집된 페이지)을 만들기 위해 출판사가 기획과 원고 정리, 편집(레이아웃·교정·교열), 제작에 기울인 노력의 결정체에 ‘저작인접권’ 같은 권리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현행 저작권법은 수업 목적 저작물 이용, 수업 지원 목적 저작물 이용, 도서관에서의 저작물 이용, 교과용 도서에 저작물을 게재한 경우 등에 대해 저자(저작권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저작물 이용자인 대학, 교육청, 도서관, 교과용 도서 제작자 등이 한국복제전송저작권협회에 보상금을 납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확보되는 보상금은 출판물의 저자에게만 지급된다. 도서의 무상 이용과 보상금이 늘어나는 환경에서 저자와 함께 출판 콘텐츠 창작자라고 볼 수 있는 출판사는 배제되어 있다. 출판자의 목소리가 저작권법에 개정에 합리적으로 수용되어야 창작자 중심의 출판 생태계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산업의 발전 속도에 맞는 합리적인 창작자 보호와 시스템이 필요하다

뉴미디어와 모바일 환경이 일상화되면서 출판 콘텐츠와 유통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소위 ‘스낵 컬처(Snack Culture)’로 불리는 웹소설과 웹툰은 큰 틀에서 출판 산업에 들어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국내 웹툰 산업의 규모가 2020년에 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7년에 웹툰 플랫폼은 40개가 넘었고, 해외 진출까지 성공한 몇몇 플랫폼은 100억 원에서 1,000억 원에 이르는 투자를 유치하기도 한다. 웹툰이 새롭게 떠오르는 비즈니스 모델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 수년 간 웹툰 시장은 높은 성장률을 보였지만, 반대편에는 불공정 행위, 부당 처우 등의 그림자도 공존하고 있다. 2017년 유명 웹툰 플랫폼인 L사는 블랙리스트 의혹, 원고료 미지급, 지각비 문제 등으로 연이은 논란으로 이슈가 되었다. 이에 L사는 작가 커뮤니케이션 부서 신설, 지체상금 폐지, 미니멈개런티(MG) 인상 등 개선책을 발표했지만, 상호 소송이 진행되면서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서 유명한 작가나 인지도가 높은 제작자는 대형 플랫폼과 콘텐츠 계약을 체결할 때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무명이거나 신인 작가들에게는 어려운 현실이다.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서 저작권과 계약 조항을 위배하는 행위를 벌이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피해를 호소하는 창작자들도 비례하고 있다.

불합리한 창작자의 권리 침해를 바로 잡고 업계가 공정하고 상생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당사자간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갑과 을이라는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있고, 개인과 기업이라는 몸집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업을 위해 체결한 계약 관계로 인하여 발생하는 각종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첫 단추는 서면으로 작성된 업계 ‘표준 계약서’를 쓰는 것이다. 하지만, 계약서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계약서의 조항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당사자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중요성을 인식하는 일이다. 만약 문제점이 있으면 저작권 관련 기관의 상담 협조 또는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으로의 출판 창작자들을 위한 공정과 상생 이슈는 사업 환경을 선도하는 저작권법 개정과 함께 1인 창작자와 출판사를 위한 권익 보호도 중요한 과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1인 출판사는 직원 4명 이하 규모로 대개 출판사 대표가 직접 기획, 필자 섭외, 원고 청탁, 편집, 디자인, 제본, 배본 및 유통과 홍보 등 출판의 전 과정을 담당하는 출판사를 뜻한다. 2013년 4만 4,148개였던 출판사 수는 2016년 5만 3,574개로 증가했다. 이중 연간 1~5종의 책을 발행하는 소규모 출판사는 3,730개에서 4,938개로 늘어났다.

1인 창작자와 출판사가 늘어날수록 불공정 거래와 저작권 침해 문제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창작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추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더불어, 유통 플랫폼 사업자들도 공정한 거래 관계 구축을 위해 창작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 새로운 수익 창출을 위한 2차저작물 제작과 판권 계약 체결에 있어서도 대한 용어 정의부터 계약 기간 및 수익 배분율이 업계 관행 또는 특약 사항이 표준 계약서를 기준으로 작성되었는지 상호 확인해야 한다. 끝으로, 불공정 계약 관행을 근절하고 창작자, 사업자, 정부 등 다양한 주체가 모여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자리와 시스템 구축이 절실한 시대다. 2017년 12월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콘텐츠산업 중장기 정책 비전>의 3대 기본 방향에 ‘공정 상생’이 핵심 키워드로 들어있다. ‘공정하고 상생하는 산업 환경 조성’과 ‘정의롭고 공정한 저작권 기반이 강화’될 수 있도록 앞으로 출판업계뿐만 아니라 지식문화산업계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끝’. 

posted by 류영호

미국의 독립서점은 어떻게 부활했을까? (기획회의, 458호)

외부 매체 기고 2018. 2. 22. 19:30

미국의 독립서점은 어떻게 부활했을까?

 

류영호(교보문고 콘텐츠사업단 차장)

 

일반적으로 독립서점(independent bookstore)은 규모와 운영 인력이 중소형 규모로 소유 구조가 개인 또는 단체이며, 거대 상업 자본에서 독립된 서점을 의미한다. 이와 대비되는 대형 체인형 서점은 대부분 주식회사 법인의 형태로 대규모의 투자 자본가 또는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반스앤노블(Barnes&Noble)과 보더스(Borders) 같은 대형 체인형 서점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미국 전역의 대형 쇼핑몰에 입점했고, 30%씩 할인 판매를 단행하면서 많은 중소형 서점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1990년대가 되면서 반스앤노블과 아마존이 온라인 서점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95년에 문을 연 아마존이 급성장하면서 5년 후 미국 내 독립서점의 수는 43%나 줄어 들었다. 2007년 아마존이 전자책 킨들(Kindle)을 오픈하면서 종이책 판매에 집중된 대형 체인형 서점도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의 급성장 등으로 촉발된 경영 실패로 인해 2011년에 보더스가 파산하면서 미국 서점업계는 충격에 빠져 들었다. 2010년대에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환경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 디바이스가 일상화되었다. 출판 생태계에도 전통적인 포맷과 채널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출판 유통을 대표하는 서점의 위상도 변하고 있다. 반스앤노블도 디지털 신규 사업에서 실패를 겪으면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상대적으로 온라인과 전자책 판매에 있어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춘 아마존은 2015년부터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면서 출판유통 시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 유통 역량으로 성장과 경쟁을 거듭하던 대형 서점 브랜드 사이에서 독립서점들이 반격하고 있다. 미국서점협회(American Booksellers Association)의 발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5년 사이에 미국 전역의 독립서점 수가 각각 1,651개에서 2,227개로 35% 정도 증가했다. 독립서점의 서적 판매액은 2015년에 전년대비 10%, 2016년에는 5% 증가했다. 온라인 서점이 본격화되었던 1990년대 중후반, 독립서점이 감소되었던 것과는 다른 결과를 보인 것이다.

우선, 미국 독립서점의 부활은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앙과 온라인에 집중된 소비문화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만든 ‘바이 로컬(Buy local)’ 운동을 시작점으로 촉진되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전국의 많은 도시에서 독립서점 대표들은 그들의 경제적 이익에 사회적 가치를 결합시키는 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주변의 다른 독립적인 가게 주인들에게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지역적 공동체 가치가 유지되었고, 그들과의 연합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주민들에게 독립서점은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들의 모임 장소이자 지역 커뮤니티의 거점이 되었다.

최근 기술의 재출현(Technology Re-Emergence)이 혁신을 불러올 수 있다는 연구로 잘 알려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라이언 라파엘리(Ryan Raffaelli) 교수는 미국 독립서점의 부활의 비결을 3C라는 키워드로 정리했다. 서점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만들고(Convening), 기계적인 시스템이 아닌 사람이 직접 책을 추천하고(Curation),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만들었기(Community)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서점업계에서 기술의 혁신을 주도하는 아마존이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것을 독립서점이 채워갔다. 아마존이 빠르고 편리함을 강조한다면 독립서점은 느리되 사람들과의 꾸준한 접촉을 만들고 있다. 그러면, 3C에 대한 간략한 분석과 주요 사례를 살펴보자.

 

① 컨비닝(Convening) : 온라인 서점에서 더 많은 할인율과 무료 배송으로 책을 구입할 수 있지만, 지역의 소규모 독립서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성이 있다. 대부분의 독립서점들은 독자들이 좋아하거나 관심을 갖고 싶은 주제와 저자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빠르고 다양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오프라인 단골 고객 리스트를 활용하고,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큰 비용없이 저자와 출판사, 독자 간의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독립서점들은 이제 “얼마나 책을 많이 팔았느냐가 아니라, 독자들이 얼마나 좋은 시간을 보냈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양한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각종 출판 행사, 저자와의 만남, 어린이 생일 파티, 청소년 도서 출판 지원, 다양한 독서 모임 등을 주관하고 열고 있다. 몇몇 독립서점은 연간 500개 이상의 행사를 주최할 정도로 지역의 출판문화 향상에 많이 노력하고 있다. 2004년 뉴욕 맨해튼 소호에 문을 연 독립서점 맥널리 잭슨(Mcnally jackson)을 오픈한 사라 맥널리는 대형 서점에서 취급하지 않는 다국적의 작가들이 펴낸 책들을 판매한다. 거의 매일 독서 토론회와 해외 작가와의 만남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매장에 있는 에스프레소 북머신(Espresso Book Machine)을 통해 지역 사람들이 편리하게 책을 제작할 수 있는 POD(Publish On Demand) 서비스도 제공한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북 코트(Book court) 서점은 주말 저녁 시간에 가족 단위로 찾아올 수 있도록 무료로 영화를 상영하거나 음악 행사를 열고 있다. 정치·사회분야의 토론회, 시 낭송, 어린이 북클럽 등 거의 매일 문화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덴버에 있는 북바(book bar) 서점은 책과 함께 와인과 맥주를 마실 수 있게 판매하는데 지역 주민들이 술 한잔하면서 책도 읽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게 만들었다. 펜실베니아 미드타운에 있는 스콜라 서점(Midtown scholar bookstore)은 매달 작가와 저널리스트를 초청해서 글쓰기 관련 강의를 열고 있다. 기타리스트나 인디밴드의 음악회, 장르별 북클럽은 멀리있는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찾을만큼 인기가 높다.

② 큐레이션(Curation) : 독립서점들은 좀 더 개인적이고 전문적인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도서 진열과 재고 관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베스트셀러만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서점 직원들이 선별한 신인 작가들과 예상하지 못한 제목을 발견할 수 있게 진열해서 독자들과 친밀도를 향상시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출판사와 서점의 일방적인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의 특성, 서점 주인과 직원들의 전문성을 활용한 도서 큐레이션은 기계적인 추천에 비해 책과 만나는 감성을 더욱 자극시킨다. 미국 독립서점의 부활을 주도하는 곳은 뉴욕으로 맨해튼과 브루클린에는 100개 이상의 독립서점들이 있다. 서점마다 독특한 구성과 진열 방식으로 만들어진 그들의 큐레이션 역량은 세계 여러 서점에서 벤치마킹할 만큼 매력적이다.

보니 슬로닉 쿡북스(Bonnie slotnick cookbooks)는 요리책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국가별 전통 요리, 인종과 종교별 음식의 특징, 다양한 컬러를 가진 식재료, 음식으로 치유하는 방법, 디저트의 역사, 연령대에 맞는 간식, 주방 인테리어 소품 등 요리와 관계된 특별한 주제를 책을 중심으로 만든 서점이다.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은 직원 채용시에 저자를 맞추는 등 주관식 퀴즈를 풀어야 하는데, 창고 직원들도 빠짐없이 책 전문가로 채용한다. 200여명의 직원들이 책을 잘 알기 때문에 코너별로 스태프가 직접 POP(Point of Purchase) 광고물에 실명으로 책을 추천하고 있다.

미스터리어스 서점(Mysterious bookshop)은 스릴러와 미스터리 소설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서점 직원들이 모두 해당 분야의 매니아라서 방문하는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성향을 파악하고 책을 추천해준다. 전문가들이 직접 읽어보고 맞춤형 큐레이션을 해서 독자들의 도서 구입과 방문율이 높은 편이다. 아이들와일드 서점(Idlewild books)은 주인이 여행전문가로 여행서적을 주로 취급하는데 주머니 크기의 여행 가이드북부터 여행지의 역사서, 주인이 여행하면서 모은 희귀한 도서와 소품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다.

원 그랜드 북스(One grand books)는 주요 직업군을 구분해서 인기있는 책을 큐레이팅하는데 큐레이터 카테고리에는 배우, 작가, 미술가, 요리사, 디자이너, 방송인, 정치인 등 각계 전문가들이 있다. 그들이 직접 추천하는 10종의 책들이 간략한 추천평과 함께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동시 진열된다. 동종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나 진출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추천서로 인기가 많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더 라스트 북스토어(The last bookstore)는 대형 금고를 활용한 도서 코너를 구성하고, 책으로 동굴 모양의 터널을 만들어서 포토존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마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절판된 책이나 희귀한 책을 진열하고, 저자의 초판 싸인본을 별도 장식장으로 만들어서 책의 새로운 발견을 제공하고 있다.

③ 커뮤니티(Community) : 독립서점은 미국의 지역주의에 대한 아이디어를 최초로 채택한 산업군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립서점은 지역 사회 가치에 대한 연대를 강조해서 아마존과 대형 체인형 서점들로부터 독자들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 미국서점협회는 서점과 지역의 다른 사업체들의 사이에서 파트너십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독립서점에서 진행되는 특별한 행사를 홍보하기 위해서 협회는 전용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회원사 중에서 지역 내의 커뮤니티를 모범적으로 운영한 사례를 공유하고, 독립서점의 정체성을 강화하는데 미국서점협회는 중요한 구심점이 되고 있다.

포틀랜드 ‘문화의 허브’라고 불리는 파월스 서점(Powell's city of books)은 거리의 한 블록 전체를 차지하는 4층 건물에 100만 권 이상의 신간과 중고 도서를 판매하면서 지역의 거점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서점을 자주 방문하면서 주변의 카페와 쇼핑 매장들도 상권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뉴욕에 있는 블루 스타킹스(Blue stockings)는 자원 봉사자들의 활동으로 운영되는 페미니즘 전문 서점이면서, 성소수자와 진보적 정치 성향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매달 페미니스트, 진보적 교육자들을 위한 북클럽, 레즈비언들이 모여 뜨개질을 하는 모임, 여성과 트랜스젠더를 위한 오픈 마이크도 운영된다. 블루 스타킹스는 다른 길을 걷는 외로운 개인들이 서로의 지성과 감성을 나누는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세인트 마크스 서점(St.Marks Bookshop)은 2008년에 임대료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위기였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뉴욕의 시민들과 작가들의 청원으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었다. 지역의 문화 커뮤니티를 지키는 독립서점이 사라지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사례다.

독립서점의 커뮤니티는 독자들의 힘도 있었지만, 독립출판사와 독립출판물을 통해서 더 끈끈해질 수 있었다. 자본과 규모의 경제에서 벗어나 각자의 고유함과 자유로움을 중시하는 독립출판의 생산물이 독립서점을 만나서 상생할 수 있었다. 1976년에 설립된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는 아티스트 도서 판매·연구·출판지원 등을 목표로 운영되는 자선단체로, 뉴욕에 독립서점을 적접 운영하고 있다. 서점 주인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주변 상인들과의 적극적인 커뮤니티를 통해 지역만의 차별화된 문화를 만드는 역할을 서점이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독립서점들은 경기 불황의 파장에서 자유롭지 못한 편이다. 따라서, 출판 관련 단체와 정책 기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미국서점협회는 독립서점을 지원하는 인디 바운드(Indie Bound)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독립서점이 지역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각종 지원 정책과 정보를 제공한다. 지역의 독립서점 회원들을 위해 신뢰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 목록을 발표하는데, 일정 수준의 큐레이션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다. 몇몇 독립서점은 전국과 지역의 베스트셀러를 비교해서 별도의 큐레이션 도서 코너를 구성하기도 한다. 전자책 전문 회사인 코보(Kobo)와 제휴를 통해서 전용 디바이스 판매를 지원하고, 수수료를 통해 신규 매출 채널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제 국내 독립서점들도 보다 적극적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출판 산업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갖출 필요가 있다. 함께 연대하면 거래 조건 개선과 차별화된 이벤트를 추진할 수도 있다. 물론, 출판유통 프로세스와 독자의 양상 등에서 미국 서점 생태계와 한국은 차이가 많다. 하지만, 미국의 독립서점들의 부활을 이끈 3C 분석은 한국의 독립서점들에게 지속가능한 전략과 실행의 방향을 보여준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통해 새로운 사람과 문화를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서점을 통해 욕구를 채워간다. 독립서점에서 찾을 수 있는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친근감, 정서적 애착감은 시대가 변해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물성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의 본성과 소비 욕구에 가장 근접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지역에서 사람과 책을 연결하는데 최선을 다하며 분투하는 수많은 독립서점들을 응원한다. 《끝》

posted by 류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