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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전통출판의 구조

출판과 서점 이야기

by 류영호 2015. 10. 3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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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전통출판의 구조


(Telesurtv.net, 2015.09.09)


전자출판과 자가출판의 등장으로 보다 다양한 작가들이 다양한 출판물을 출간할 기회가 확대되었지만 전통적인 출판사는 아직도 검증된 작가와 책들을 선호하고 있다. 사상의 지평을 넓히고 문화적 다양성을 옹호하며, 새로운 발상을 자극하는 사회적 책임이 출판업계에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라틴 아메리카의 신예 타마라 피어슨(Tamara Pearson)이 살펴 본 전통출판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아래의 글이 생산적이고 유의미한 비판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익 창출에 중점을 둔 출판산업이 경험과 관점의 다양성을 억압하고 있다.

책은 압축된 삶이며, 비명과 분투의 이야기로 요약된 인문학이다. 혹자는 책속의 세상이 불평등으로부터 안전한 피난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거대 상업 출판사와 같은 전통출판산업은 특정 작가나 캐릭터,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특정 사상을 고취시킴으로써 편견을 만들고 자유로운 발상을 가로막는 사회적 결과를 도출한다.


대형 출판사는 다른 여타 산업에서처럼 판매 물품의 독점 등을 통해 거대 비즈니스를 형성한다. 이들은 책의 사회적 중요성 보다는 이윤에 의해 움직이며, 이익이 확실히 보장되는 책만 출간하기 때문에 일반도서 시장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보장된 책’ 에는 저명인사가 쓴 책이나, 교과서와 필독서 등 확실한 시장이 형성된 책, 호러와 로맨스 같은 인기 장르의 책, 그리고 이미 엄청나게 성공한 작가의 책 등이 있다. 식재료의 독점이 음식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언론의 독점이 현실에 대한 이해를 제한하는 것처럼 출판사의 독점은 우리의 사고나 정체성, 역사 및 세계관에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출판업계의 이윤은 강력하고도 안정적이다. 전자출판의 붐으로 인해 출판산업이 타격을 받았다는 루머는 다소 과장되었다. 출판사의 이윤은 10% 내외에 안착되어 있으며, 다른 산업의 마진과 비교하여 중간 정도의 위치인 전자출판의 이윤보다 높다. 미국의 출판시장은 300억 달러 정도이다. 포브스(Forbes)지에 따르면, 아마존(Amazon)의 최근 도서 판매 연간 수입은 52억 5,000만 달러에 달한다. 반면, 수익성보다 문해성 혹은 지적 역량을 추구하며 책을 판매해 온 독립서점은 지난 20년간 미국에서만 4,000 곳에서 2,000 곳으로 50% 감소했다. 독립 출판사 역시 비슷한 고난을 격고 있다.


여기에, 언론사에 대한 매각 게임 역시 출판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3년에 거대 출판사 랜덤하우스(Random House)와 펭귄그룹(Penguin Group)이 합병되어 펭귄랜덤하우스(Penguin Random House)가 되었다. 당시 랜덤하우스는 미디어 재벌인 베텔스만(Bertelsmann) 소유였고(1998년 매각), 펭귄은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를 소유한 피어슨(Pearson)소속이었다. 피어슨은 이코노미스트(Economist)의 지분도 소유하고 있었지만 지난달 매각했다. 펭귄랜덤하우스는 세계 출판시장의 1/4 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하퍼콜린스(HarperCollins)는 1987년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프(Rupert Murdoch’s News Corp)에 인수되었다. 지난해 뉴스코프는 로맨틱 소설 출판사 할리퀸(Harlequin) 역시 인수했다.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s)는 법률서적 출판사 웨스트(West)와 스윗앤맥스웰(Sweet & Maxwell)의 소유주이며, 잘 알려져 있듯이 다국적 매체 로이터(Reuters)지를 소유하고 있다.


거대 출판기업이 창출하고 있는 막대한 이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가들은 최소 임금 면에서 봤을 때 가장 학대받는 일꾼이며, 작가 지망생들은 처음부터 아예 제외된다. 특히 소설가의 경우 몇 년간 어떠한 수익이나, 노동권, 혹은 안정장치 없이 작업에 몰두하며 책이 출간되더라도 온오프라인 판매수익의 7%만을 받게 된다. 만약 이들이 성공하게 되더라도 판매수익의 12%까지가 고작이다. 게다가 출판사는 모든 프로모션 행사에 드는 수고를 작가에게 맡겨 버리고, 서점은 작가의 책을 판매대에 놓아주는 대가로 판매 수익을 훨씬 웃도는 수백만 달러를 요구한다. 전통 출판사가 혹여 처음 책을 출간하는 작가와 계약을 맺는 경우에도, 안정적인 경제적 배경이 있거나 잠재적 독자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이 모든 조건들은 가난한 작가들 - 혹은 가난하다고 여겨지는 작가들을 사실상 소외시킨다.


출판시장에 뛰어들 때 이윤을 중요시하는 이들 출판사는 구태의연한 홍보를 하며, 날카롭고 새로운 발상을 지녔거나,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기술을 가진 책들은 간과한다. 전통 출판사는 소외된 작가와 캐릭터, (비소설의 경우) 전문 저자들을 여성, 이주민, 성소수자 등의 억압받는 사람만큼이나 평가 절하한다. 저명인사와 성공적인 판매만을 좇으며, 이로 인해 작가 중 상위 0.01%가 전체 판매 수익의 50%를 담당하고, 0.1%가 80%를 담당하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된다.


아동도서협회(Cooperative Children’s Book Center)에 따르면 2014년 미국 아동서적 중 고작 14%만이 유색인 작가가 쓰거나 유색인종에 관한 내용이라고 한다. 유색인종은 미국 인구의 37%를 차지하고 있다. 흑인 시인이자 작가인 니키 그라임스(Nikki Grimes) 에 따르면, 유색인종중 극소수만이 출판계에서 의사결정권을 가지는 위치에 있다고 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책을 사고 읽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의해 출간되는 책은 17~22%에 불과하다고 국립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이 밝혔다. 이를 두고 영국의 여성잡지 엠슬렉시아(Mslexia)는 출판사에 완성된 원고를 의뢰하는 여성 작가가 50% 이하이며, 이는 성공한 여성 작가 롤모델이 없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2012년 비다카운트(VIDA count)1)에 따르면, 216명의 남성 작가가 뉴욕 리뷰 오브 북스(New York Review of Books)에 언급되는 동안 여성 작가에 대한 언급은 89명에 그쳤다고 한다. 이러한 수치들이 바로 관점과 경험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선진국과 제3세계 사이에서 더욱 극심하다. 영국과 미국 이외의 국가(인도, 나이지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등)에서 쓰인 영어 책은 훨씬 출간되기 힘들며, 출간되더라도 그 지역 특유의 어투를 미국식 영어로 수정하라는 강요를 종종 받는다.


전통적인 대형 출판사들은 퀄리티를 조절하기 위해 많은 원고들 중에서 가장 좋은 책을 선택한다고 생각되고는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은 보통 기득권을 가진 작가들에계 특혜를 주며, 실제로 우리가 읽는 책의 퀄리티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어떤 에디터는 아시안계 미국인 작가를 설명할 때 “이국적”이라는 편견의 표현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출판사들에게 “훌륭한” 이야기란 종전과 다름없는 고루한 것, 인기 장르에 부합하는 익숙한 것, 정형화된 공식에 들어맞는 오래된 캐릭터이다. 이 공식은 성차별, 인종차별, 연령차별, 계급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책과 영화 속에서 자주 되풀이되며 사람들의 사고 방식에 영향을 준다. 이로 인한 사회적 영향은 불평등과 편견을 발생시킨다. 책과 영화, 미술, 음악 등은 우리의 의식을 비추고, 또한 불러일으킨다. 이 의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우선적으로 여기는 것, 가치를 결정한다.


아직 쓰이지 않았고 출간되지 않은 책들, 따라서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 많은 관점들은 세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는 곧 수많은 잠재적인 시와 이야기들, 즉 책들을 사장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다수가 그대로 묻히는 현재 상황은 우리의 상상력을 빈곤하게 만들 수도 있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불평등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할 수 있는 책과, 중년의 영웅, 백인이 아닌 주인공, 제3세계의 사상가들이 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없다면, 세계는 더욱 지루해질 것이다.


- 원문 : http://www.telesurtv.net/english/opinion/The-Traditional-Publishing-Industry-Is-Killing-Books-20150909-0011.html

- 출처 : 월간 웹진 <출판 이슈> 2015년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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