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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즈니가 몇 차례 위기를 극적으로 넘긴 것은?
    경영이야기 2013. 6. 20. 11:43

    디즈니가 몇 차례 위기를 극적으로 넘긴 것은?

    입력 : 2013.06.20 09:57 | 수정 : 2013.06.20 10:03

    
	콘텐츠의 상징인 월트디즈니 CEO 로버트 아이거. photo 전기병 조선일보 기자
     콘텐츠의 상징인 월트디즈니 CEO 로버트 아이거. photo 전기병 조선일보 기자
    슘페터는 기업의 혁신과 관련해 “성공을 이룬 모든 기업은 어느 한순간에만 기업가적이었다”고 주장했다. 혁신을 앞세운 기업가 정신을 유지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월트디즈니그룹은 대표적인 혁신 기업이다. 월트 디즈니와 로이 디즈니 형제가 미국 LA에서 창업한 지 올해로 90년을 맞지만 아직까지 세계 최고 최대의 콘텐츠 기업으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디즈니의 사업 영역은 엄청나다. 영화, TV, 홈비디오 제작·유통, 테마파크, 출판, 음악 등 거의 모든 콘텐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디즈니는 기술의 발달 등 사업 환경이 변할 때마다 시대적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선두에서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해왔다. ‘선진국 10억명 인구가 디즈니 속에서 태어나 디즈니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 ‘나이를 먹지 않는 왕국’ 등의 말은 디즈니의 혁신 DNA와 생명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디즈니는 몇 차례의 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혁신을 앞세워 위기를 돌파해 왔다.

    디즈니의 과감한 도전은 1995년 픽사(PIXAR) 스튜디오와 손잡고 최초의 컴퓨터 애니매이션 ‘토이 스토리’를 제작한 데서 잘 드러난다. 창립 이래 줄곧 사람이 그리는 애니메이션만 만들어온 디즈니 스튜디오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디즈니는 직원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패를 통해서 창의와 혁신을 키운다는 것이다. 앤디 버드 월트디즈니 인터내셔널 회장은 디즈니의 인재 관리 방식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사람들의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혁신을 하도록 격려한다. 그리고 실패는 오히려 장려된다. 계속 최고 자리에 머물 수 있으려면 혁신적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디즈니는 직원들로 하여금 빨리 실패하도록 한다.” 

    디즈니의 혁신의 역사에는 혁신의 경영자들이 등장한다. 앤드 버드 회장에 따르면, 창업가 월트 디즈니부터 ‘창조자(creator)’였다. 앤드 버드 회장은 “월트는 발명가였고 혁신가였으며 창조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혁신과 기술이라는 서로 다른 두 부분을 결혼한 부부처럼 한 몸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말했다. 배운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그림을 그려야 했던 학습장애 소년은 상상력을 상품으로 만들었고 사람들에게 ‘꿈’을 팔았다. 

    월트 디즈니의 사업가적 기질은 2차 대전의 위기 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1937년, 전시 경제상황에서는 엄청난 금액인 149만9000달러를 투자해 첫 애니메이션 영화인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만들었다. 당시 디즈니는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시설과 인력의 94%를 정부 홍보영상을 만드는 데 동원했지만 나머지 시설과 인원으로 코미디와 만화영화를 만들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고 이는 적중했다.

    그는 1950년대 기존의 놀이공원과는 완전히 다른 ‘테마파크’를 만들면서 ‘이매지너(imaginer)’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디즈니의 기술자들이 놀이공원 모든 곳에 상상력을 불어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낸 말이다. 지금도 디즈니 그룹에서는 엔지니어라는 말 대신 이매지너라는 말을 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디즈니의 도전은 90년의 역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1928년 최초의 만화 캐릭터인 미키마우스를 선보인 디즈니는 1930년대 미키마우스 클럽을 탄생시키면서 캐릭터 관련 상품과 서적 등을 팔기 시작했다. 지금도 엄청난 부가가치를 올리고 있는 디즈니 캐릭터의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use)’의 전범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1940년대에는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고, 1950년대에는 TV 방송과 함께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과 테마파크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980년대 디즈니는 닌텐도 게임의 열기를 놓치지 않고 게임사업에 뛰어들어 사업을 확장했다. 지금도 월트디즈니그룹 산하의 디즈니 인터랙티브 미디어그룹은 온라인, 모바일, 비디오게임을 망라하는 사업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어 1990년대 들어서는 미국 3대 공중파 방송사 중 하나인 ABC 등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방송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현재 디즈니는 여러 사업 분야 중에서도 방송과 인터넷을 아우르는 미디어 네트워크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ABC를 비롯해 어린이 전문 방송 ‘디즈니 채널’ ‘ABC 패밀리’ ‘SOAPnet’ 등의 채널과 ‘스테이지9디지널 미디어’ 등의 제작사, 그리고 ‘라디오 디즈니 네트워크’ 등을 갖고 있다. ABC가 8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스포츠 전문방송 ESPN도 디즈니 소유다. 현재 ESPN의 가치는 1996년 디즈니가 ABC 인수를 위해 쏟아부은 190억달러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디즈니의 도전사에서 위기에서 일으켜 세운 혁신의 경영자로 평가받는 사람은 1984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마이클 아이즈너다. 그는 영화사업에 진출했다가 위기를 맞은 디즈니를 다시 애니메이션 왕국으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단순한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혁신이 가미된 변신이었다.

    그는 단순한 아이들 취향의 만화영화 스튜디오였던 디즈니를 ‘종합엔터테인먼트 미디어그룹’으로 탈바꿈시켰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온킹’ 등의 히트작을 쏟아낸 것은 이러한 청사진이 뒷받침된 결과였다. 하지만 20년간 CEO로 군림해오던 아이즈너는 독선적 경영과 주주들과의 불화 끝에 2005년 로버트 아이거 현 CEO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디즈니의 중단 없는 성장을 이끌고 있는 현재의 로버트 아이거 CEO 역시 디즈니의 혁신 DNA를 물려받은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그가 CEO에 오른 뒤 처음으로 한 일은 픽사 스튜디오의 인수였다. 픽사 스튜디오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 있을 때 설립한 회사로, 디즈니의 최대 경쟁자로 평가받는 애니메이션 제작 업체였다.

    하지만 아이거와 잡스는 디즈니의 픽사 인수라는, 74억달러짜리 M&A를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잡스는 디즈니의 지분을 확보해 주주가 됐다. 테크놀러지에 관심이 많은 아이거는 이후 디즈니의 TV물을 애플의 아이팟에서 볼 수 있게 하는 등 플랫폼 혁명도 이끌어냈다. 그는 또 ‘위기의 주부들’ ‘로스트’ ‘그레이 아나토미’ 등 TV 시리즈물에서 잇단 히트작들을 만들어냈다. 

    디즈니는 아이거의 도전이 성공하면서 최근 실적에서도 상종가를 이어가고 있다. 2011년 408억9300만달러의 매출액에 88억2500만달러의 순익을 내 매출액과 순익 면에서 모두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한 디즈니는 지난 1분기에도 순이익 15억달러를 기록해 지난 동기보다 32%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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